2일 금융권과 NH투자증권 등에 따르면 올해 콜옵션 만기가 도래하는 주요 금융지주의 신종자본증권 규모는 3조8400억원이다. 지난해(2조4700억원) 대비 1조4000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지난달 KB금융지주가 405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데 이어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이 발행을 위한 이사회 의결을 마친 상태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은 지난해 말 이사회를 열고 각각 27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최대 4000억원까지 증액 발행할 수 있다.
우리금융은 주요 증권사와 발행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오는 4일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함께 가진 하이브리드 증권이다.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길면서 채권처럼 해마다 일정한 이자나 배당을 준다.
발행사 결정에 따라 만기 연장이 가능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회사채의 경우 부채로 분류되는 것과 차이점이 있다.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효과가 있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지표를 관리해야 하는 금융사가 자본 확충을 위해 주로 발행한다.
금융지주사의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어 영구채로 분류되나 대부분 5년 후 중도 상환하는 콜옵션이 붙는다. 발행 후 5년 내에 콜옵션을 행사해 조기 상환하는 게 시장의 관례처럼 여겨진다.
4대 금융지주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일정을 보면 KB금융은 올해 총 1조1300억원 규모의 콜옵션 행사일이 도래한다. 오는 5월 3250억원, 7월 3700억원, 10월 435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해야 한다.
올해 KB금융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규모가 큰 이유는 2020년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생명)을 인수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영향이다.
KB금융은 푸르덴셜생명 인수 대금을 계열사 중간배당,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선순위채 등을 통해 조달했다. 특히 푸르덴셜생명 인수로 이중레버리지비율이 금융당국 권고치인 130%에 육박하면서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저금리 기조까지 겹치면서 다른 금융지주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한 자본 여력 확보에 적극 나섰다. 당시 8개 금융지주사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규모는 4조1500억원에 달한다.
신한금융은 오는 9월 4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가 예정돼있다. 하나금융은 5월 4500억원, 8월 4100억원 등 총 8600억원 규모의 콜옵션이 행사된다. 우리금융의 경우 2월 4000억원, 6월 3000억원, 10월 2000억원 등 총 9000억원을 상환해야한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개선 차원에서도 금융지주들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수요는 이어질 전망이다.
BIS 총자본비율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눈 값으로, 은행의 대표적인 자산 건전성 지표다. 4대 금융의 BIS 총자본비율은 15~16%대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3%를 웃돌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4대 금융 BIS비율은 KB금융이 16.75%로 가장 높고 이어 신한금융 15.85%, 우리금융 15.63%, 하나금융 15.42% 순이었다.
다만 올해 원달러 환율 상승 등에 따른 RWA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자본적정성 관리를 위해 신종자본증권 발행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KB금융은 이번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BIS비율이 0.1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채권 시장에서 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이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금융지주 중 가장 먼저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KB금융은 지난달 수요예측에서 모집금액(4050억원)을 밑도는 374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추가 청약을 통해 모집 물량은 모두 채웠지만, 6000억원 증액 발행에는 실패했다.물량이 충분하지 않아 금리는 희망 밴드(3.3~4%)의 최상단인 4%로 확정됐다.
통상 연초에는 채권시장에서 기관 투자자 유동성이 풍부해 발행 여건이 발행사에 우호적이다.
KB금융 신종자본증권의 흥행 실패 배경으로는 보험사 등 다른 금융사에 비해 높지 않은 금리 메리트가 꼽힌다.
한화손해보험은 지난 20일 진행한 3000억원 규모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541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희망 금리 밴드로 4.3%~4.8%를 제시해 4.62%에서 목표액을 채웠다.
추후 보험사 후순위채 발행이 줄지어 예정돼 있다는 점도 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 인기가 떨어진 요인으로 지목된다.
금융지주들은 신종자본증권 대비 이자 부담이 낮은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도 노리고 있다.
KB금융은 지난달 24일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앞서 지난달 중순에는 우리금융과 NH농협금융이 각각 1000억원,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찍었다.
최근 금융지주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전략 이행 차원에서 보통주자본(CET1) 비율이 더 중요해진 만큼 BIS 총자본비율 제고 필요성이 낮은 상황이라면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모습이다.
주요 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 금리가 4%대로 책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2%대 후반 금리의 회사채 발행의 이점도 부각되고 있다.
이번에 KB금융이 발행한 회사채 금리는 2.9%로, 최근 신종자본증권 발행 금리(4%)보다 1%포인트 넘게 낮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지주들은 위험가중자산(RWA) 증가 속 자본비율준수를 위해 코코본드 발행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며 “평판리스크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첫번째 콜옵션 행사 기일에 조기 상환하는 기조를이어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아란 한국금융신문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