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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자 해달라면서 실적은 숨기는 제약사들

김나영 기자

steaming@

기사입력 : 2025-01-20 00:00

제약바이오의 고질병, '모호한 기업 공개'
숨길수록 '투심절벽'으로 내몰리는 회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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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영 기자

▲ 김나영 기자

[한국금융신문 김나영 기자] "제약바이오, 취재하기 힘들지 않아요?"

마치 날씨 얘기를 꺼내듯 업계 관계자들이 건네는 말이다.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기밀'이 많아 정보 얻기가 어렵지 않냐는, 위로와 공감이 반쯤 섞인 소리다.

정보 공개에 인색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다. 이제 막 제약바이오 담당 기자로서 걸음마를 뗀 필자도 그들에겐 '리그 밖 비주류'다.

그 철옹성을 넘지 못한 비주류 기자가 가장 기대기 좋은 곳은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다. 사업보고서는 한 해 동안 제약사들이 어떤 경영을 했고 실적을 얼마나 냈는지, 그나마 투명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최후의 취재 창구다.

그러나 제약사 정보는 사업보고서에서조차 모호한 부분이 있다. 연구개발(R&D) 비용을 보고서에 명확하게 기재하는 회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제약사에게 R&D는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닌 미래 가치를 창출해내는 핵심 투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R&D는 곧 제약사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근거이자 기업 가치 평가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정통 제약사로 꼽히는 상위 몇몇 제약사들은 포괄손익계산서 내 연구개발비를 별도 표기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R&D 비용을 판매비와 관리비(판관비)에 포함시키고 있다. 순수 R&D 금액을 한눈에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설 유지비, 인건비 등 간접 비용이 얼마나 R&D에 반영되는지 미로처럼 복잡하게 설계된 사업보고서 위에서 방황하는 날만 느는 실정이다.

회사마다 자산화와 비용처리 방식도 제각각이다. 일부 제약사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신약 개발 초기엔 판관비로 처리했다가 개발이 거의 완료된 신약은 자산으로 기록하는 혼합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각자의 기준을 토대로 정보를 교묘히 숨기거나 과장하는 일종의 '꼼수'다.

불투명한 정보 공개는 임상 결과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컨대 오스코텍은 지난 2023년 면역혈소판감소증 치료제 임상 결과를 부실하게 발표해 잡음을 냈다. 당시 오스코텍은 미국 임상 2상에서 유효성 통계를 확보하지 못했는데, 이 같은 사실을 공시에 누락시킨 거다. 회사는 바로 다음 날 공시를 정정했지만, 일부러 부정적 결과를 숨긴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피하긴 어려웠다.

지난해(1월 1일~11월 4일)엔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불성실공시법인 118곳 중 25곳이 제약바이오 기업이었다. 전체 공시 위반 법인 5건 중 1건 꼴이 제약바이오사였던 셈이다. 사유는 대부분 공시 번복이나 불이행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엔케이맥스는 박상우 대표가 반대매매로 지분을 잃고 최대주주 지위도 상실하는 과정의 공시를 늦게 발표하면서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받았다. 최근엔 국제약품이 안산공장 정제 제형에 대해 제조업무정지 행정처분을 받았으나 이를 뒤늦게 공시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 수순을 밟았다.

업계의 폐쇄적인 정보 공개 관행이 산업의 성장을 방해할 거란 걱정은 기우일까. 신약 개발은 최소 10년간 평균 1조 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긴 레이스다. 이를 완주해야만 하는 제약바이오사들의 항구적 과업은 다름 아닌 '자금 확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로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필수적인 산업이란 의미다. 하지만 여전히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실적을 감추거나 부풀리다 '양치기 소년'으로 몰려 투심을 잃고 있다.

갈수록 얼어붙는 투심에 곳곳에선 앓는 소리가 터진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바이오 신규 투자액은 8844억 원으로 전년(1조1058억 원) 대비 23.1% 줄었다. 코로나19로 투자가 활발했던 2021년(1조6670억 원)과 비교하면 52.7% 감소했다. 바이오텍 3곳 중 1곳은 추가 조달 없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진단했다.

투자 위축의 주된 이유로 고물가나 기준금리 인상 등이 꼽히나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신뢰 저하와도 무관치 않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보고서를 통해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떨어진 원인으로 투자자들의 신뢰 상실을 지목하기도 했다.

근래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유한양행 등 소위 '대장주'에 투심이 몰리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만난 한 바이오 투자자는 "이제 제약바이오주는 믿고 거른다. 모 코스닥 상장사의 보도자료에 현혹돼 투자손실이 어마어마했다"며 "최소 금융당국 가이드도 제대로 안 지키는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결국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K-제약바이오가 경쟁력을 잃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증권사 보고서를 인용한 화려한 보도자료나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친화 정책이 아닌, 명확한 회계처리와 기업 정보다.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한 첫발은 투명한 정보 공개에서 시작된단 사실을 깨달아야 할 때다.

김나영 한국금융신문 기자 steami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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