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경.
이로써 신약 허가 절차가 약 30% 단축될 전망이다. 하지만 대가는 있다. 기존보다 50배 가까이 비싸진 허가 수수료다.
관련업계에 따르면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 1일부터 신약 허가 신청부터 허가증 발급까지 295일 이내 완료한다는 '신약 허가·심사 혁신 프로세스'를 운영한다. 기존 신약 허가 절차에 평균 420일이 걸리던 것을 감안하면 30% 가량의 시간을 아끼게 되는 셈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성 기반의 신속·투명· 예측 가능한 허가·심사 시스템을 운영함으로써 신약의 신속한 제품화를 지원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특히 GMP 조사 기간을 '90일 이내'로 명확히 했다.
이를 위해 당국은 민원부터 '수입 원료의약품 등록'(DMF) 시 GMP 적합 평가를 세계보건기구(WHO)/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 기준에 적합함을 입증하는 'GMP 증명서' 확인으로 대체하고, 처리 기간을 120일에서 20일로 크게 줄이기로 했다. 의약품 허가 신청 시 GMP 평가에 필요한 제출자료도 기존 11종에서 4종으로 축소했다.
식약처가 변경된 제도에서 내세운 또 다른 '혁신'은 허가·심사 인력이다.
신약 허가 신청이 접수되면 10~15명으로 이뤄진 품목별 전담팀을 구성한다. 신청 제약사와의 대면상담은 기존 최대 3회에서 10여 회로 확대했다. 허가 절차 단축뿐만 아니라 서비스 면에서도 고도화를 이루겠단 취지다. 식약처는 제약사들이 대면상담을 통해 허가 절차 중 보완할 부분을 빠르게 인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기존보다 크게 뛴 허가 신청 수수료 때문이다.
식약처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작년까지 887만6000원이던 허가 신청 수수료를 올해부터 4억1000만 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하루아침에 수수료 비용이 약 4542% 폭증했다.
수수료 인상의 주된 이유는 전문심사 인력 확대다. 허가 수수료 대부분은 인건비로 쓰일 예정이다. 한 해 신약 허가 신청 건수가 26~30건 사이인 것을 고려하면 약 100억 원의 재원이 확보되는데, 식약처는 이에 맞춰 심사 인력을 100명 이상 확충하겠단 구상이다. 식약처 측은 “의·약사, 박사 후 경력 3년 이상의 전문인력 심사자 비율을 30%에서 7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유례없는 수수료 인상에 업계에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필요한 변화라는 입장과 부담스럽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빠른 신약 허가를 위해 기꺼이 인건비를 지불하겠다는 제약사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수료가 상향되는 만큼 전문심사역량이 강화되고 심사 기간이 단축돼 원활한 허가가 예상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실제 일부 제약사들은 제도 도입이 고려되기 전부터 먼저 허가 신청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허가 수수료 관련해서는 사실 협회 회원사들의 요청이 먼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언급했다.
협회 측에 따르면 해당 논의는 공론화 이전부터 약 10여 년간 업계에서 꾸준히 이뤄져왔다.
그는 “국내 허가 심사료가 낮은 탓에 심사 인력이 적고 허가가 늦춰진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돈을 더 내서라도 허가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는 방향이 더 이익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상폭이 너무 커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업계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허가 제도와 행정서비스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수료 인상폭이 한국 산업 규모에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KRPIA는 "4억1000만 원의 허가 수수료는 미국, 유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진국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유사한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는 일본 대비 한국의 시장 규모는 4분의 1이며, 약가는 60%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다.
KRPIA는 이번 제도 변화로 혁신 신약 도입이 되레 지체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한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와 어려운 약가 환경, 한국 특이적 허가 요건 등을 고려했을 때 과도한 허가 수수료 인상은 유병률이 낮거나 시장 규모가 작은 혁신 신약의 도입을 늦추는 또 다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예 기업들의 신약 개발 의지를 꺾어놓을 수도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수수료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어 우려를 키운다.
이와 관련, 식약처는 제약사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여러 방편을 마련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희선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사무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심사 취하 및 반환 기준이 따로 있다"며 "예컨대 여러 의약품 파트 중 일부가 적합 판정을 못 받아 허가 신청이 취하됐을 시, 통과된 파트에 대해선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고 미진한 부분만 내면 된다"고 했다. 아울러 "중소기업 제약사들이 허가 신청을 할 경우 수수료를 50% 감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나영 한국금융신문 기자 steami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