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를 지향하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외부인사를 영입한 것은 그만큼 면세사업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사명과 BI 교체 등으로 변화의 발판을 다진 현대면세점은 ‘상품기획의 전문가’ 박장서 대표를 통해 2025년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10월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박장서 현대면세점 영업본부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박 신임 대표는 1992년부터 33년간 국내 주요 면세점 영업을 담당해온 면세사업 전문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박 대표는 1967년생으로,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그는 롯데백화점에서 시작해 롯데면세점을 거쳐 2016년 신라면세점 상무, 2019년 두타면세점 전무를 지냈다. 이후 2020년 현대면세점에 입사, 최근 영업본부장으로 일하다 이번 인사에서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박 대표는 MD와 영업 등을 두루 거친 ‘상품 기획’ 전문가다. 면세업에서는 상품기획이 특히 중요한 만큼 현대면세점이 상품을 통해 경쟁력을 다지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면세업계 인사 트렌드를 보면 업계 1, 2위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모두 재무전문가를 수장으로 앉혔다. 업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익성’에 방점을 둔 인사를 단행한 것. 하지만 현대면세점은 달랐다. 상품기획에 특화된 면세사업가를 수장으로 앉혀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앞서 현대면세점은 올해 면세사업 전문성을 높이는 작업에 집중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7월 ‘현대백화점면세점’에서 ‘현대면세점’으로 사명을 바꿨고, 11월에는 새로운 BI를 선보이며 백화점 이미지를 떼내고 면세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업계 후발주자로 시작한 만큼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에 힘을 쓰는 모습이다.
현대면세점은 2018년 면세사업을 시작해 2019년 시장점유율 4%대에서 지난해 말 14.4%로 성장했다. 하지만 실적은 그리 내세울 게 못 된다. 면세사업에 뛰어든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3분기 흑자를 냈다. 다만, 이마저도 반짝 실적이었을 뿐 그 이후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현대면세점은 올해 1분기 52억 원, 2분기 39억 원, 3분기 8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행운도 뒤따랐다. 지난해 인천공항면세점 DF5 구역 운영권을 상대적으로 낮은 임차금액에 획득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현대면세점은 지난 2020년 사업권을 획득한 1터미널 DF7 구역에 이어 지난해 7월과 8월, 2터미널 DF5 구역, 1터미널 DF5 구역 영업을 시작해 공항면세점 영업 규모가 기존 대비 약 2배 늘어났다. 이와 동시에 올 초에는 면세점협회장 자리에도 오르며 ‘면세업계 4강구도’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면세점은 향후 점포별 특색에 맞는 명품과 K패션 브랜드 유치에 나선다. 인천공항점은 지난 10월 생로랑과 발렌시아가 부티크가 각각 제1여객터미널과 제2여객터미널에 문을 열었다. 이를 통해 인천공항점은 기존에 운영 중이던 루이비통, 샤넬, 구찌에 더해 총 26개의 명품 브랜드를 확보하면서 국내 면세업계 최고 수준의 명품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무역센터점은 올해 7월 펜디에 이어 지난 10월 생로랑 매장을 새롭게 오픈했으며, 11월 중 발렌시아가 매장도 추가로 오픈했다. 또한 동대문점에는 올해 마뗑킴, 마리떼프랑소와저버 등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신규 K패션 브랜드가 대거 입점했다.
현대면세점 관계자는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진출 등 사업 확장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며 “지속적인 도전과 혁신으로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더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33년간 면세업계의 활황과 불황을 모두 경험한 만큼 현대면세점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적임자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박 대표는 업계에서 소문난 상품기획 전문가로, 현장을 두루 거쳐 면세사업에 정통한 인물”이라고 하면서 “현대면세점도 이를 계기로 상품경쟁력이 굉장히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슬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seulg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