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는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말한다. ELS는 주가지수나 개별종목 등 기초자산의 가격이 일정한 범위를 유지하면 약정된 수익을 제공하는 파생상품이다. 통상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일정 가격을 밑돌지 않으면 정해진 수익을 주고 조기 상환된다. 다만 기초자산 가격이 약정한 수준을 밑돌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국내 은행이 ELS 관련 상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이다. ‘이자 장사’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수료이익을 키워 비이자이익을 확대하는 ‘수익다각화’ 전략에 전략의 일환이었다.
문제는 2021년 초까지만 해도 1만 2,000선을 넘어섰던 홍콩H지수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해 말 8,000선까지 떨어진 H지수는 지난해 말 5,000선이 깨지며 폭락했다. 홍콩H지수 연계 ELS가 대거 판매된 지난 2021년 초 대비 50% 이상 떨어진 것이다.
2021년 가입한 ELS 상품의 만기가 대부분 올해 초 도래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약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2021년부터 관련 ELS 상품에 투자한 많은 투자자가 조기상환에 실패하고 원금을 잃을 상황에 놓였다.
은행별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은 KB국민은행이 8조1972억원으로 가장 컸다. 다음으로 신한은행(2조 3,701억원), NH농협은행 (2조 1,310억원), 하나은행(2조 1,183억원), 우리은행 (413억원)이 뒤를 이었다. 상품별 최고 원금 손실률은 52.1%, 은행별 손실률은 47.8~51.3% 수준으로 나타났다.
50% 수준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홍콩 ELS 사태’에서 가장 큰 쟁점은 불완전판매였다. ELS는 주가연계 파생상품으로 기초자산 가격 변동에 따라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은행을 비롯한 ELS 판매 금융사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강조하며 구체적인 위험 요소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금융기관은 원칙적으로 투자자의 투자성향을 파악한 후 이에 맞는 상품을 추천해야 하는데 ‘홍콩 ELS 사태’에서는 저위험 성향의 투자자에게도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등 투자자 적합성 원칙을 위반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특히 피해자 중 60대 이상 고령층 비율이 높게 확인되며 더욱 논란이 일었다. ELS상품은 구조가 복잡해 일반 투자자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고령층에게 안정성을 강조하며 판매를 유도했다는 의혹이 나왔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ELS 손실과 관련해 은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금감원장은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며 “설명 여부를 떠나서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은행 등 금융사를 대상으로 현장검사에 돌입했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2023년 말 이미 점검에 착수했던 금감원은 ▲ELS 판매한도 관리 미흡 ▲KPI(핵심성과지표) 상 고위험·고난도 ELS 상품 판매 드라이브 정책 ▲계약서류 미보관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했고, 현장검사를 통해 심층 점검에 나선 것이다.
검사 결과 홍콩H지수 ELS 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시스템 자체와 개별 상품 판매 과정에서의 불완전판매도 다수 적발됐다.
문제를 파악한 금감원은 피해자들을 위한 손실 관련 분쟁 조정 기준을 발표했다. 판매사별 공통 적용 기준과 투자자별로 고려되는 개별 기준을 통해, 가령 80대 고령 고객의 경우 최대 70%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에 맞춰 시중은행들도 금감원 분쟁 조정 기준안에 맞춰 구체적인 자율 배상안을 마련했다. 홍콩 H지수 하락으로 만기 손실이 확정됐거나, 손실 구간에 진입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홍콩H지수 판매 잔액이 가장 컸던 국민은행은 자율 조정 협의회를 신설해 기존 고객 보호 전담 부서와 함께 신속한 투자자 배상 처리를 지원했다. 신한은행도 소비자보호그룹 내 금융 상품 지식과 소비자보호 정책 및 법령 등 관련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자율 조정 협의회를 설치해 소비자 배상에 집중했다.
홍콩 ELS 사태에서 가장 눈에 띈 대응을 보인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내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위원회'와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지원팀'을 신설해 원활한 손해배상 처리를 위한 업무 수행을 지원했다.
특히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위원회'는 관련 법령과 소비자보호 등에 관한 학식·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 3인을 포함한 총 11명으로 구성됐으며, 금감원의 분쟁 조정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보다 공정한 배상 절차를 위해 노력했다.
은행들의 적극적인 보상 대응을 통해 현재 5대 시중은행의 배상안 동의 비율은 90%를 넘어섰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합의가 이뤄지면서 연내 피해 배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ELS 사태가 벌어진 후 1년 만이다.
금융위원회는 앞으로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난달 공개세미나를 열어 은행의 ELS 등 고난도 금투상품 불완전판매를 막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세미나에서 이정두 금융연구원 박사는 ▲최대 원금손실 가능 금액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복잡한 고난도 상품의 은행 판매 전면 금지 ▲지역별 거점 점포에서만 고난도 금투상품 판매 허용 ▲은행 점포 내에서 예·적금 창구와 고난도 금투상품 판매 채널 분리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홍콩 ELS 사태는 금융상품 판매 시 투자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위험 고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투자자들 역시 금융상품의 구조와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투자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홍지인 한국금융신문 기자 hele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