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 사옥 전경./사진=GC녹십자
2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녹십자그룹은 2025년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오너 3세'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 허일섭 GC그룹 회장의 장남 허진성 GC 전략1담당이 경영관리본부장(전무)으로 승진하면서다. 허진성 신임 본부장은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임명되면서 보직도 전략에서 재무로 바꾸게 됐다. GC그룹에서 오너가 일원이 승진한 건 8년 만이다.
허진성 본부장은 회계뿐만 아니라 투자 및 자금 조달, 인수합병 등 그룹의 전반적인 살림을 책임질 예정이다.
업계에선 이번 인사가 GC그룹 경영 승계의 밑그림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 GC그룹은 숙부와 조카가 공동경영을 펼치고 있다. 2009년 허영섭 GC그룹 선대 회장이 타계한 후, 녹십자홀딩스는 그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이끌고 있다.
2015년부터는 허영섭 전 회장의 차남인 허은철이 핵심 계열사인 GC녹십자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삼촌-조카 공동 경영이 시작됐다. 이어 2017년, 허 전 회장의 삼남 허용준도 녹십자홀딩스 이사회에 입성하면서 숙부인 허일섭 회장과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
그간 허일섭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면 형제 경영이 시작될 거란 관측이 많았지만, 허진성 신임 본부장의 등장으로 사촌 경영 가능성에 힘이 실리게 됐다. 특히 허진성 전무가 맡은 경영관리본부장은 허용준 사장이 대표에 오르기 직전 맡은 요직인 만큼, 향후 허진성 전무가 허일섭 회장의 뒤를 이을 수도 있다. 허일섭 회장은 1954년생으로 승계를 염두에 두는 게 이상하지 않을 나이기도 하다.
추가로 허일섭 회장의 차남인 허진훈 씨 역시 GC녹십자에서 글로벌사업본부 알리글로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GC녹십자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의 글로벌 사업을 맡고 있다. 다만 그는 1991년생으로 1970~1980년대생인 타 3세들과는 나이만큼 직급 차이가 있다.
지분구조를 봐도 오너 3세 4명 모두 존재감이 있다. 녹십자홀딩스는 허일섭 회장이 최대주주로 12.20%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허용준 사장 2.91% ▲허은철 사장 2.63% ▲허진성 전무 0.77% ▲허진훈 씨 0.72% 등으로 이뤄져 있다. 허일섭 회장의 장·차남은 사촌 형제들보단 지분이 낮은 편이나, 추후 허일섭 회장의 지분 승계 방식에 따라 균형이 맞춰질 수도 있다.
시장에선 향후 사촌 간 지분경쟁 가능성을 내다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하지만, GC그룹이 10년 이상 삼촌-조카 경영에서 보여준 안정적인 모습을 사촌 경영에서도 그대로 보여줄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업계에선 GC그룹을 두고 '아름다운 경영'이라고 부른다"면서 "제약업계는 오너 경영이 주를 이루는 산업이라 어느 정도 경영권 분쟁이 있는 편인데, GC그룹은 그와 반대로 균형감 있는 공동경영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촌경영으로 체제가 바뀌더라도 지금처럼 아름다운 경영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한국금융신문 기자 steami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