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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은 사모펀드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을 상대로 국제상업회의소(ICC)에 2차로 제기한 중재에서, 중재판정부가 신 의장이 어피니티의 풋옵션 주식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정할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렸다고 19일 밝혔다.
어피니티는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로부터 1주당 24만5000원에 교보생명 지분 24.01%를 사들였다. 당시 어피니티는 2015년 말까지 교보생명이 상장(IPO)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지분을 신 의장에게 팔 수 있는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간 계약을 신 의장과 체결했다. 이후 IPO가 이뤄지지 않자 어피니티는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하고 오랫동안 거래관계를 맺어온 안진회계법인을 감정평가기관으로 선임했다.
신 의장이 안진회계법인이 산정한 풋가격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며 이의를 제기하자 어피니티는 2019년 3월 신 회장을 상대로 ICC에 중재를 제기했다. 1차 중재판정부는 2021년 9월 어피니티가 요구한 41만원을 비롯한 어떤 가격에도 신 회장이 풋주식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고 판정했다. 어피니티가 제시한 풋가격이 합리적으로 산출된 것이 아닌 만큼 신 의장이 풋주식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었다. 1차 중재판정부가 신 의장 손을 들어줬지만, 어피니티는 이에 불복하고 2차 중재를 신청했다.
2차 중재에서도 풋옵션가 41만원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1차와 달리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 주식 가치를 재산정하라고 중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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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주주간 계약에 따르면, 풋옵션 가격을 사전에 정해놓지 않고 FMV로 한다고 규정하면서 FMV 산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양측이 각각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 평가한 FMV의 차이가 10% 이내이면 두 가격의 평균을 행사가격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차이가 10% 이상일 경우 어피니티가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신 의장이 택하면 그 평가기관이 제시한 가격이 풋옵션 가격이 된다.
이 절차에 따르면 신 의장 평가기관 선정 및 가격 제시 → 어피니티의 41만원과 10% 이상 격차 → 어피니티 제3의 평가기관 3곳 제시 → 신의장 1곳 선택 → 제3의 평가기관의 가격제시 형식으로 풋가격이 결정된다.
시장에서는 제3의 평가기관이 산정한 풋옵션 가격이 어피니티의 초기 투자가격인 24만5000원을 초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 주식의 공정시장가치를 1주당 41만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어피니티 측이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할 당시 교보생명의 IPO 공모 예정가인 18만~21만원(크레디트스위스)과 큰 차이가 있다. 교보생명의 시장가격이 1주당 20만원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진회계법인은 이보다 두배에 이르는 가격을 풋주식의 FMV로 산정한 것이다.
현재 교보생명의 시장가치가 주당 20만원을 넘지 못하는 것도 주요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8월 교보생명이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사주조합과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교보생명의 주당 가격은 19만8000원이었다. 이는 풋옵션 분쟁 이후 처음으로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치평가를 받아 산정된 가격이다.
일각에서는 감정평가기관 선임 과정에서부터 난항이 예상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 안진회계법인이 교보생명 풋옵션 FMV 산출 과정에서 어피니티와의 부정공모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며 논란이 됐다.
회계업계 한 관계자는 “어피니티 측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시장 가격과 괴리된 가치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미 수년간의 소송으로 논란이 된 사안에 평판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설 회계법인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한 가치가 41만원보다 낮아진다고 해도 신창재 회장은 여전히 부담을 안게 된다. 신창재 회장이 어피니티와 갈등을 해결하려면 어피니티가 엑시트 할 수 있도록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어피니티에 자금을 돌려줄 경우 다시 투자자를 유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창재 회장 측은 2차 중재판정 중 평가기관 선임결정은 1차 중재판정의 기판력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있는 만큼 중재판정 취소 등의 법적 절차도 고려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정이 기판력을 위반한 중대 사례로, 중재판정취소 및 중재판정 승인·집행 거부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하경 한국금융신문 기자 ceciplus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