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을 포함한 예금취급기관의 경우 연말과 연초에 예금 만기가 집중돼 있어, 일찍이 유동성 관리가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비상계엄 사태·탄핵 정국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어 저축은행업권은 더욱 유동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15일 한국금융신문이 국내 자산규모 상위 10개 저축은행(SBI, OK, 한국투자, 웰컴, 애큐온, 다올, 페퍼, 신한, 하나, 상상인)의 분기보고서를 종합한 결과, 올해 말에 만기가 도래하는 10개 사의 예수금 규모는 19조661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예수금 중 36.24%를 차지하는 규모다.
유동성 비율이란 유동성 부채에 대한 유동성 자산의 보유비율이다. 즉, 만기가 3개월 이내인 예금 등 부채의 상환요구가 들어왔을 때 이를 충당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낸다. 금융당국이 규정한 규제비율은 100%로, 고객이 예금을 돌려받을 때 이를 충당할 정도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게끔 규제하고 있다.
올 3분기 말 기준 전체 예수금 대비 3개월 내 만기 도래 예수금 비중이 가장 높은 저축은행은 SBI저축은행으로, 43.89%에 달했다. 이어 ▲애큐온저축은행 39.50% ▲웰컴저축은행 38.43% ▲신한저축은행 38.39% ▲하나저축은행 37.79% 순으로 높았다. 가장 낮은 곳은 페퍼저축은행으로 25.75%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유동성 비율이 가장 높은 저축은행은 171.3%를 기록한 다올저축은행이었다. 이는 금융당국의 규제비율보다 71.37%p가량 높은 수치다.
다올저축은행의 올해 말 만기 도래 예수금 비중은 35.73%로 10개 사 중 4번째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비율이 높은 이유는 다올저축은행의 경영 기조 때문이다.
이전부터 다올저축은행은 꾸준히 높은 유동성 비율을 유지해 온 바 있다. 특히,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유동성을 준비해 300%대의 유동성 비율을 기록했다. 2022년 말 239.76%였으나, 유동성 확보를 통해 6개월 만에 319.13%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많은 저축은행이 유동성 대비를 위해 예금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에 금리가 일시적으로 올라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금리를 인상해 예금을 유치하면 추후 높은 이자비용을 감당해야 하므로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이자비용 상승 방어를 위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준비해 왔으며, 이번 3분기에도 연말 예금 만기 도래를 대비해 유동성을 미리 확보한 것이다.
다올저축은행 관계자는 "4분기에 수신만기 도래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준비를 해 유동성 비율이 높게 나온 것 같다"며 "금리 변동 없이 이자비용을 절감하고자 미리 대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유동성 비율이 가장 낮게 나타난 신한저축은행의 경우 연말 만기 예수금 비율이 38.39%로 네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다만, 신한저축은행은 꾸준히 100%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의 유동성 비율을 유지해온 바 있다. 이러한 경영 기조의 배경에는 지주 자회사 저축은행이라는 점이 있다. 지주 계열 저축은행은 유사 시 유상 증자 등의 지주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 지주계 저축은행인 SBI저축은행은 연말 만기 예수금 비율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올 3분기 말 SBI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은 113.25%로 저축은행 상위 10개 사 중 두 번째로 낮게 나타났다.
업계 전체에서 유동성 비율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나, SBI저축은행이 타 저축은행 대비 부동산PF 대출 규모가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동성 비율은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연말 만기 도래 예·적금에 대한 사전 유동성 준비는 모두 마친 상황"이라며 “최근 정치적 이슈로 인해 매일 수신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는데, 특이사항이 없어 추가적인 조치는 현재까진 없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말 만기 도래와 더불어 비상계엄 사태·탄핵 정국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감이 저축은행 업권에 감돌고 있다. 현재까지 ‘대규모 자금인출’(뱅크런)이나 유동성 위기 등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업계는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 발생 가능성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당장 유동성 변동이 일어난 정황은 없으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유동성 비율을 관리하고 있다.
일례로 상상인저축은행은 ALM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유동성 갭 분석, 유동성 비율 시뮬레이션 등 모니터링을 강화해 유동성 비율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도 유동성 모니터링 담당 부서에서 이전보다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유사 시 중앙회 지원 및 한국은행 RP 매매를 통한 유동성 지원 등에 나설 방침이다.
금융당국과 업계는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해 돌발 사태 대비와 시장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10일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 CEO 및 협회 등과 현안 간담회를 개최하고, 각 업권별로 충분한 가용 유동성 확보 및 비상 대응 체계 재점검, 부실자산의 신속한 정리 등을 당부했다.
저축은행의 유동성은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과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건전성 제고 노력도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저축은행 총수신은 큰 증감 없이 통상적 변동을 유지하고 있다. 예금 인출에 대비한 가용 자금도 적정 수준을 보유 중이다. 실제 저축은행 총수신은 지난 3월 말 103조7000억원에서 지난 9월 말에는 102조6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에는 10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유동성 대응체계 재점검과 적극적인 부실자산 정리 등을 당부했다.
먼저, 저축은행은 3중 유동성 대응 체계를 재점검해 비상시에도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하도록 주문했다. 3중 유동성 대응 체계는 개별사 자체 유동성, 중앙회 자금지원, 한국은행 유동성 공급 순의 3단계로 이뤄져 있는 체계를 말한다.
또한, 단기손익에 연연하지 말고 자산건전성 확보를 위해 경·공매, 매각 등을 통해 적극적인 부실자산 정리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당장의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부실자산 정리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자산건전성 악화 지속으로 더 큰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축은행 수신 동향 모니터링 과정에서 특이사항이 포착될 시 감독당국과 신속히 공유 및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 저축은행에 대한 실시간 예수금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저축은행 업권은 당분간 영업 확대보다는 리스크 관리 중심의 경영 전략을 유지할 예정이다.
저축은행 업계는 "당면한 PF사업장 재구조화·정리계획을 신속히 이행하는 등 건전성 제고 노력을 지속할 방침"이라며 "부실 정리를 통해 확보된 신규 여력은 지역 서민 금융공급 등 본연의 역할을 제고해 나가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다민 한국금융신문 기자 dm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