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만 이를 두고 엔씨소프트 노조가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우회적 구조조정이라고 반발하는 만큼 향후 노사 간 문제 해결은 과제다.
엔씨소프트는 28일 판교 R&D센터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독립 스튜디오 체제 전환을 위한 4개의 자회사 설립을 확정했다.
신설 회사는 3개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 ▲㈜퍼스트스파크 게임즈 ▲㈜빅파이어 게임즈 ▲㈜루디우스 게임즈와 AI기술 전문기업 ▲㈜엔씨 에이아이 등 4개의 비상장 법인이다. 신설 법인 4곳은 2025년 2월 1일 출범을 목표로 한다.
이번 분사는 엔씨소프트가 진행 중인 체질 개선의 마지막 퍼즐이라는 평가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실적 부진으로 비핵심사업 정리, 자회사 정리, 희망퇴직 단행 등 강도 높은 체지 개선을 진행 중이다. 이번 독립 개발 스튜디오 체제 도입으로 사업 구조 개편까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엔씨소프트는 창립 이래 본사 중심의 일원화된 개발 조직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넥슨, 넷마블, 크래프톤 등 주요 대형 게임사들이 다양한 산하 개발 스튜디오를 확보하며 통해 신규 IP 개발의 자율성을 높인 것과는 상반되는 행보였다.
엔씨소프트는 히트 IP인 리니지를 중심으로 역량을 쏟으며 성장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리니지 IP의 매출 하락과 IP 다양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며 한계에 부딪혔다. 업계에서도 본사 중심의 개발 환경에서는 각 프로젝트의 자율성과 혁신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 엔씨소프트는 본사에 집중된 사업 구조로 인건비 등 고정비가 증가하면 매출 증가 폭보다 영업이익이 하락 폭이 더 크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엔씨소프트의 본사 기준 임직원은 약 5000명 수준으로 국내 게임사 중 본사 집중도가 가장 높다. 경쟁사인 넥슨과 넷마블의 본사 기준 임직원이 약 3~4000명 수준이다.

엔씨소프트신설 법인 대표 4인.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문영 퍼스트스파크 게임즈 대표, 배재현 빅파이어 게임즈 대표, 서민석 루디우스 게임즈 대표, 이연수 엔씨 에이아이 대표. / 사진=엔씨소프트
이미지 확대보기박병무 대표도 이날 임시 주주총회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게임 개발을 효율화하고 도전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하기로 했다”며 “본사에 너무 많은 인력이 집중돼 있다보니 창의성과 절실함이 떨어진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독립 개발 스튜디오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속도감, 유연함, 창의성을 갖춘 혁신적인 개발 문화를 만들고, 글로벌 신규 IP를 적극 발굴할 것”이라며 “신설 법인이 전문성과 기술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엔씨소프트 모두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독립 스튜디오는 ▲쓰론 앤 리버티(TL) ▲LLL ▲택탄 등 엔씨소프트가 준비 중인 신규 IP를 각각 맡아 개발 및 사업을 전문적으로 운용해 나갈 계획이다.
㈜퍼스트스파크 게임즈는 TL의 사업 부문을 담당한다. TL은 10월 1일 글로벌 론칭 이후 안정적인 서비스를 이어오며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독립 스튜디오 체제를 통해 파트너사와 협력을 강화하고, TL을 글로벌 IP로 육성한다. TL 개발과 서비스를 총괄하는 TL Camp 최문영 캡틴이 대표를 맡는다
㈜빅파이어 게임즈는 LLL의 사업 부문을 담당한다. LLL은 슈팅 장르 게임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과 성공 가능성을 지닌 IP다. 스튜디오 체제에서 장르에 대한 개발력과 전문성 강화에 집중한다. LLL 개발을 총괄하는 LLL Seed 배재현 시더가 대표를 맡는다.
㈜루디우스 게임즈는 택탄의 사업 부문을 담당한다. 택탄 역시 글로벌 흥행 가능성이 높은 전략 장르의 게임이다. 독립 스튜디오만의 창의적인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속도감 있는 게임 개발에 나선다. 택탄 개발을 총괄하는 Project G Seed 서민석 시더가 대표를 맡는다.
엔씨소프트는 각 독립 스튜디오가 최상의 개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특히 본사 차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등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박병무 대표는 임시주주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앞의로의 신규 IP 개발은 대부분 독립 스튜디오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축적했던 개발력에 분사를 통해 좀 더 자율성을 부여하기 위함으로 자회사와 본사 사이의 퍼블리싱 계약에서도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 외 개발 등 방향성에 대한 간섭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독립 개발 스튜디오들이 하나의 경쟁력 있는 회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재무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엔씨소프트의 이 같은 분사를 두고 회사 내부에서는 ‘우회적 구조조정’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이날 임시 주주총회장 앞에서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엔씨소프트지회(우주정복)가 분사 반대와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우주정복 관계자는 이번 분사에 대해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분사한 뒤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 폐업에 나설 수 있는 우회적 해고로 인한 고용 안정성이 우려된다”며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분사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병무 대표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많은 임원들이 회사를 나갔고, 연말에 예정된 인사와 내년 임원 보수를 살펴보면 임원진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본사에서 분사한다고 해당 조직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본사의 초기 시드 조직들에게도 설명했지만, 대규모 인력 채용을 실시할 경우 새로운 스튜디오 조직을 개설해 IP 개발을 이어갈 방침”이라며 “오늘 같은 주주총회를 통한 추가 분사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rlqm9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