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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힘쓰지 말고, 드론에 양보하세요"…한진의 '스마트 물류' 가보니

손원태 기자

tellme@

기사입력 : 2024-11-14 15:50

천장 높이 물건도 드론이 재고 파악 척척
목소리로 배송 시간까지 입력되는 고글도
조현민의 ‘섹시한 물류’, ‘스마트 물류’로
내년 초 본격 적용…해외 사업장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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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힘쓰지 말고, 드론에 양보하세요"…한진의 '스마트 물류' 가보니
[한국금융신문 손원태 기자] 한진이 꿈꾸는 미래형 스마트 물류의 밑그림이 공개됐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드론이 공중 부양해 인간의 눈을 대신한다. 한쪽에서는 첨단 기술을 접목한 고글이 인간의 손발 역할을 하며 일손을 덜어준다. 한진은 앞서 올 한 해 국내보다는 해외로 눈길을 돌려 글로벌 거점 확보에 공세를 취한 바 있다. 그러나 쿠팡의 등장과 함께 국내 물류 시장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결국 승부수를 던졌다.

한진은 지난 13일 서울 금천구 한진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한진 스닉픽(Hanjin Sneak Peek)’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스닉픽(Sneak Peek)은 ‘살짝 엿보다’라는 의미다. 한진은 이번 간담회에서 그동안 준비한 스마트 물류 기술의 현 상황을 공개했다. 물류센터 도입 전 일종의 시연회 성격이었다.

이날 한진이 선보인 스마트 물류 기술은 크게 두 가지다. 상품의 재고 파악을 하는 ‘드론’과 택배기사가 착용하는 ‘스마트 글라스’다. 한진은 이를 위해 7000만 원(드론 2000만 원, 스마트 글라스 5000만 원)을 투자했다.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에 대한 투자 이유도 간단하다. 대형 장비를 들여오지 않고, 적은 비용으로 물류센터의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류센터 현장에서는 마치 경보 소리가 들리듯 드론이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드론은 13m 높이의 선반을 관찰하며, 상품에 부착된 큐알(QR) 코드를 정확히 인식했다. 드론은 초속 30㎝/s로 움직이는데, 이는 인간의 근로 시간 약 20배를 단축하는 효과다. 드론은 최고 20m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드론은 인간의 눈길이 닿기 어려운 곳까지 화면에 담는다. 한진의 ‘창고관리시스템(WMS)’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게차로 실어나르면서 일일이 제품 수량을 파악했던 과정은 단번에 사라진다.
사진은 지난 13일 한진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열린 ‘한진 스닉픽(Hanjin Sneak Peek)’ 기자간담회에서 '스마트 글라스'를 낀 작업자가 직접 물류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사진=손원태기자

사진은 지난 13일 한진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열린 ‘한진 스닉픽(Hanjin Sneak Peek)’ 기자간담회에서 '스마트 글라스'를 낀 작업자가 직접 물류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사진=손원태기자

드론이 인간의 눈높이를 대신해줬다면 스마트 글라스는 두 발이 달린 효자손처럼 인간의 손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작업자가 최첨단 고글을 쓰면 공상과학영화에나 볼 법한 디스플레이가 눈앞으로 펼쳐진다. 음성 인식 기능이 탑재된 고글로, 작업자는 입으로만 말하면 척척 일의 다음 과정을 이어갈 수 있다. 예컨대 ‘목록’이라고 말하면 고글에는 제품 목록이 나타나 해당 제품의 위치를 3D로 안내해준다. 택배기사도 이 고글을 착용하면 목소리로만 택배 도착 예정 시간을 고객에 전달할 수 있다. 배송 완료 후에는 ‘촬영’, ‘완료’ 등의 단어만 언급하면 된다. 스마트 글라스는 무게도 500g으로 매우 가벼운 편이다. 해외 직구 수요가 높아지는 만큼 외국어를 한글로 번역도 해준다.

다만, 한진은 이러한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 현재 기술개발 완료 단계라 현장에 적용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드론은 햇빛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큐알코드나 바코드 인식이 어려울 수 있고, 스마트 글라스는 제품 품절 문제와 더불어 시력에 따라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는 문제가 있다. 한진은 올해 말에서 내년 초 물류센터 현장에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를 투입해 시범 적용하고, 내년 하반기 본격적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조현민닫기조현민기사 모아보기 한진 사장은 “물류센터 현장에서 작업자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스마트 물류 기술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라고 했다.
조현민 한진 사장이 13일 한진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열린 '한진 스니픽' 기자간담회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손원태기자

조현민 한진 사장이 13일 한진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열린 '한진 스니픽' 기자간담회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손원태기자

최근 한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올 한 해 동안 보여준 글로벌 행보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

쿠팡이 국내 유통 시장을 넘어 물류업계마저 장악하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게 발단이 됐다. 실제로 쿠팡은 직매입 상품뿐 아니라 오픈마켓 사업자들의 택배 물량까지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한진은 최대 고객사였던 쿠팡이 자체 물류망을 꾸리기 시작하자 입지가 흔들렸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쿠팡의 점유율은 2022년 12.7%에서 지난해 24.1%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반면 업계 1위였던 CJ대한통운은 40.0%에서 33.6%로 내려가 쿠팡에 바짝 쫓기고 있다. 한진은 업계 2위 주자였지만, 현재 10%대 점유율로 3~4위권으로 밀려난 상태다. 조현민 한진 사장이 노삼석 한진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었던 이유다.

국내 물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글로벌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한진은 올해 태국 법인을 신설했으며, 방글라데시와 모로코 그리고 헝가리 등으로 법인을 확대해 글로벌 거점 확보에 사력을 다했다. 그 중심에는 조 사장과 노 사장, 두 사장이 있다. 이들 콤비는 우즈베키스탄과 독일, 체코, 노르웨이, 몽골, 이탈리아 등 유럽과 아시아 전역을 훑고 다녔다.

그 결과 한진의 글로벌 세력권은 2022년 12개 국가, 28개 거점에서 2023년 18개 국가, 34개 거점을 거쳐 2024년 22개 국가, 42곳 거점으로 확대됐다. 한진은 설립 80주년을 맞는 2025년까지 27개 국가, 48개 거점을 두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언급했듯 해외 직구 시장이 나날이 커지고 있고, 중동 전쟁으로 항공·해상 운임이 상승하면서 포워딩 물류를 찾는 고객사도 늘고 있다.

한진 선봉장에 선 조현민 사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조 사장은 지난 2022년 한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비전 2025’를 직접 발표했다. 그는 당시 “물류를 섹시하게 만들겠다”고 해 화제를 모았다. 일반 대중에게는 막연하고 어렵기만 한 물류 산업을 그의 주전공인 마케팅으로 재미있고 손에 잡히도록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당시 조 사장은 물류·인프라에 8000억 원, 해외 사업에 1500억 원, 플랫폼·IT·자동화에 1500억 원 총 1조1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영 행보도 적극적으로 풀어내면서 한진의 주요 행사마다 자리했다.
한진이 지난 13일,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를 활용한 스마트 물류 시연회 ‘㈜한진 스닉픽’을 진행했다. 조현민 사장이 창고 내 상품 재고 파악에 활용되는 드론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한진

한진이 지난 13일,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를 활용한 스마트 물류 시연회 ‘㈜한진 스닉픽’을 진행했다. 조현민 사장이 창고 내 상품 재고 파악에 활용되는 드론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한진

이번 물류 시연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 사장은 기자들 앞에서 직접 드론을 들어 보였고, 질의응답에도 막힘 없이 설명해나갔다. 그는 2년 전 자신이 언급했던 투자액에 대해 실제로 ‘대전메가허브터미널’을 준공하는 데 쓰였다고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조 사장은 “한진의 미국 LA 풀필먼트 센터는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다”며 “미래의 스마트 물류는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이 움직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이어 “우리는 IT 회사가 아니다 보니 기술을 적용하기까지 한계가 있다”면서 “현장에서 작업자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마치는 것이 저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미래 물류 산업에 대해서는 아파트로 예시를 들었다. 조 사장은 “아파트의 경우 택배를 받을 때 문마다 박스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 밑에서 물건을 보내면 자동으로 각 집에 박스가 배송되는 것이 미래의 물류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조 사장의 말처럼 한진은 이번에 선보인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를 해외 사업장에도 순차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이 스마트 물류를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큰 오래된 작업장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조 사장의 ‘섹시한 물류’가 ‘스마트 물류’로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손원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tellm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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