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한국금융신문 DB
이미지 확대보기12일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헬스케어 정책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가 일고 있다.
먼저 미중 바이오 패권 전쟁으로 인한 수혜다. 트럼프는 자국민의 건강정보 보호 차원에서 중국 바이오 기업과 미국 기업 간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정보 유출이 우려되는 중국 생명공학 기업 및 기관과의 거래나 계약, 보조금 제공 등을 일체 금지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에 중국 기업을 대체할 만한 국내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가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중국 우시바이오의 경쟁상대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수주가 몰릴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는 미국 하원이 생물보안법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수주 문의가 2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에스티팜도 지난 8월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기존 중국 대신 연간 매출 수조 원에 달하는 저분자 신약 원료공급사로 선정됐다.
현 바이든 정부와는 달리 트럼프의 약가 인하 기조가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단 점도 기대감을 키운다. 트럼프는 정부가 직접 약가에 개입하기보다는 제약사들의 자발적인 경쟁으로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혀왔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CMS(보건의료관리청)와 제약사들 간 직접 협상으로 약가를 인하하겠다고 한 것과는 대조적인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입장에선 한숨 돌리게 된 상황이다. 약가 인하로 글로벌 제약사들의 혁신 활동이 위축되면 통상 빅파마에 기술수출로 수익을 올리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겐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약가 인하를 위해 트럼프 당선인은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을 키우겠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로 미국 진출을 활발히 꾀하고 있던 국내 바이오 업계에겐 기회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국내 바이오 회사가 올 상반기 기준 미국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받은 바이오시밀러는 총 12개로, 미국(24개) 다음으로 많다.
KIET 측은 "트럼프는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의 사용 촉진에 우호적인 입장"이라며 "한국 바이오시밀러 수요는 최소 현재 수준은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긍정적인 면만 바라봐선 안 된단 시각도 있다. 의약품 개발까지 호흡이 긴 업계 특성과 트럼프의 보호주의 기조를 고려, 전략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단 것. 특히 중국 외 인도, 일본, 유럽 기업과의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을 대비해 단기 관점의 가격 인하보단 바이오베터 특허 기술과 다자간 협력 등으로 경쟁력을 선점해야 한단 분석이다.
정지은 KIET 연구원은 "중국 CDMO 시장을 향한 국가, 기업 간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라며 "한국기업은 생산 용량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서비스 품질 향상, 해외 파트너링 확보 등으로 비즈니스모델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의약 제조환경의 특수성, 규제 및 전환 기간을 고려하면 즉각적 수혜를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기술 이전과 밸리데이션(Validation), 규제기관 승인 등 절차가 까다로워 미국이 바이오 산업에서 '탈중국'을 이루려면 최대 8년이 필요하단 관측까지 나온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은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며 "무조건적인 수혜를 기대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사전에 치밀하게, 전략적인 판단을 갖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최대 변수다. 중국을 향하던 견제의 화살이 언제든 한국으로 바뀔 수 있단 것이다. 실제 2018년 한미FTA 개정 협상 때도 트럼프 정부의 요구로 한국 혁신 제약기업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 조항이 삭제돼 국내 기업들의 신약 개발 의지가 저하된 적이 있다.
이재국 부회장은 "미국은 자국 산업 우선주의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중국 때문에 수혜를 볼 거란 관측이 많지만 현상 유지가 될지 불확실성이 많다"며 "2025년판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이 일어나거나 암묵적인 미국의 요구가 가속화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의약품 생산기지가 미국 안에 있느냐에 따라 규제가 달라질 수 있다. 관세 역시 보호무역주의에 따라 언제든 규제가 추가될 수 있다"고 봤다.
김나영 한국금융신문 기자 steami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