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은 창업주 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지난 1961년 설립한 ‘삼양제유주식회사’를 전신으로 한다. 당시 삼양식품은 식용유를 만드는 회사였다. 전 명예회장은 1960년대 국민들 식량난 해소에도 주력했다. 그는 일본에서 직접 라면 기계와 기술을 들여왔다. 1963년 국내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삼양식품은 K라면 1세대다. 1980년대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1989년 공업용 소기름으로 면을 튀긴다는 이른바 ‘우지 파동’ 의혹에 휘말리면서 사세가 급격하게 기울여졌다. 이 사건은 1995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충격 여파로 농심·오뚜기에 비해 매출 규모가 3분의 1 안팎으로 줄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상황이 급격하게 반전됐다. 일등공신은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 며느리 김정수 부회장. 그는 2011년 초 서울 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매운 음식 먹는 것에 주목했다. 이듬해 불닭볶음면을 개발했다. 청양고추와 하바네로고추, 베트남고추, 타바스코, 졸로키아 등 맵기로 소문난 고추들을 배합해 만들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출시 10년 만에 누적 판매량 40억 개를 달성했다.
불닭볶음면은 인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이 시식하면서 해외로 퍼져나갔다. 출시 첫해인 2012년 불닭볶음면 수출액은 7500만원에 그쳤으나, 10년 뒤인 2022년 무려 6400배 커진 480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삼양식품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9090억원)보다 31% 상승한 1조1929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도 전년(904억원) 대비 63.2% 오른 1475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외형과 내실을 모두 챙겼다.
삼양식품은 올해 1분기도 기세등등하다. 매출이 전년보다 57% 오른 3857억원, 영업이익은 235% 폭등한 801억원이다. 호실적 고공행진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전년보다 83%나 뛴 2889억원을 기록했다. 삼양식품 해외 매출 비중도 70%를 넘어서면서 K라면 대표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처럼 해외에서 불닭 광풍이 불자 주가도 날아올랐다. 이달 3일 기준 삼양식품 주가는 1분기 실적 발표 전인 지난달 16일(34만3500원) 대비 70.9%나 오른 58만7000원을 기록했다. 52주 신고가를 기록하면서 불닭 코인이라는 조어도 나오고 있다. 덩달아 삼양식품 시총 역시 4조를 돌파하면서 식품업계로는 CJ제일제당 다음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동종 업계인 농심, 오뚜기 모두 제쳤다.
▲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지난 2022년 5월 삼양식품 지주사 삼양내츄럴스(현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전병우 상무 개인회사였던 아이스엑스를 흡수합병했다. 아이스엑스는 전병우 상무가 지분 100%를 가진 회사였다. 이에 전병우 상무 그룹 지배력은 이전보다 높아졌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현재 어머니 김정수 부회장이 3만5450주(32.0%)로 최대 주주다. 아들 전병우 상무는 2만6682주(24.2%)로, 2대 주주다. 이어 아버지 전인장 전 회장이 1만7650주(15.9%)로 뒤를 잇는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핵심 계열사 삼양식품 지분 34.92%(263만587주)를 갖고 있다.
전병우 상무는 지난해 9월 공식 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삼양라면 출시 60주년 기자간담회로, 전 상무는 지주사 삼양라운드스퀘어 새 사명과 미래 비전을 설명했다. 오너 3세가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인데, 이는 농심, 오뚜기보다 빠른 속도다.
전병우 상무는 1994년생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철학과를 나왔다. 이후 2019년 삼양식품 해외사업부 부장으로 입사했고, 이듬해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2022년 7월 K푸드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 삼양애니 대표직을 맡았다. 삼양애니는 2021년 12월 설립된 회사다.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전병우 상무는 삼양애니 설립 과정을 주도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4월 돌연 삼양애니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일각에서 삼양식품 경영 승계를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실제 삼양애니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15억원)보다 2배 이상 성장한 39억원을 기록했으나, 당기순손실 6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회사 측은 전병우 상무의 삼양애니 대표직 사임이 경영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회사가 커나가면서 전문경영인(CEO)을 영입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전병우 상무는 본업인 삼양식품 신사업 개발과 지주사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 등 중책을 맡았다. 어머니 김정수 부회장이 삼양식품을 재건하면서 불닭 도련님이 된 전병우 상무가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기대된다.
손원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tellm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