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그룹은 ‘무방향성 전기강판’ 등 전기차 핵심소재를 현대제철이 아니라 포스코에서 공급받고 있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전기차 구동모터코아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다. 전기차 1회 충전당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올초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25년부터 2034년까지 현대차그룹이 유럽에서 최초 현지 생산하는 전기차(셀토스급) 탑재 구동모터코아 103만대 분량을 공급하기로 했다.
앞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신공장과 국내 공장에 2026년부터 2034년까지 총 353만대 분량 구동모터코아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이처럼 대규모 납품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모터코아 주 소재인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국내에서는 포스코만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기강판은 세계적으로도 10여개 업체만 생산 가능할 정도로 첨단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포스코는 제조가능 두께 등 기술력 차이를 비교했을 때 세계 3위권에 들어갈 정도 고품질 제품을 생산한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판 내부 결정 방향이 모든 방향으로 균일한 제품으로 전동기, 발전기를 비롯해 전기차 엔진 역할을 하는 구동모터 철심(Core)에 쓰인다.
엔진 구동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철손)이 일반 철강재 대비 50% 이상 적어 전기차 주요 성능 지표인 배터리 1회 충전당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는 핵심소재다.
현대제철은 아직 무방향성 전기강판 기술 개발에서 검토 단계에 머물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재도 무방향성 전기강판에 대해 내부적으로 사업성과 향후 계획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방향성 제품은 고도 기술력이 요구돼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며 “제품 생산을 위한 공장 설비 마련 등에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고도 했다.
문제는 지난해 말 부임한 서강현 사장이 “현대차그룹 전기차 소재 공급자 역할을 공고히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핵심소재 공급계약을 포스코에 내주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 포스코의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사용해 제작된 구동모터용 철심.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전기차 1회 충전당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는 핵심소재로 국내에서는 포스코만이 제작 가능하다. 사진 = 포스코
지난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사상 최대 침수 피해를 입었을 당시, 현대차그룹도 전기 강판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계열 제철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다른 나라 제철소에서 전기강판을 사오거나 다른 부품업체로부터 전기 모터를 구매하는 방안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강현 사장은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전기차 전환 증가에 대응해 고강도 경량 차강판 개발을 지속하고 친환경에너지 운송용 강재 개발을 통해 그룹 내 종합 소재 공급 역할 위치를 공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현대제철과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전용플랫폼(E-GMP) 적용 고성형 초장력 강판, 2세대 전기차 플랫폼 대상 기어부품 등 전기차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켓에 따르면 무방향성 전기강판 수요는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2020년 32만톤에서 오는 2033년 400만톤으로 1150%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올해부터 광양과 포항제철소에서 전기차 약 500만대에 들어가는 구동 모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연간 40만톤 고효율 전기강판을 생산할 예정이다.
또 북미 등에 추가 증설을 통해 오는 2030년 생산 능력을 100만톤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글로벌 경쟁사들도 무방향성 전기강판 개발 및 생산능력을 늘려나가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강판 생산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특히 북미 전기차에 들어가는 전기강판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1·2위 철강기업인 중국 바오우강철과 유럽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 등 글로벌 철강 대기업도 무방향성 전기강판 설비에 수 조원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일본제철도 900억엔을 투자해 전기강판 제조 능력을 2027년까지 지금보다 5배 늘리기로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시장이 지속성장하는 가운데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산기업에 ‘알짜제품’이 될 전망”이라며 “현대제철이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홍윤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ahyk815@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