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저축은행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축은행 매각이 한화그룹 승계구도를 명확히 하기 위한 계열사 재편 작업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제일화재는 김승연닫기김승연기사 모아보기 한화그룹 회장의 누나인 김영혜씨가 운영했던 회사다. 김영혜씨는 회사를 인수하며 이름을 새누리상호신용금고로 바꾸고 2002년에는 새누리상호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김영혜씨는 기업을 운영하며 고군분투했지만 회사는 금융당국에서 경영개선명령을 받을 정도로 부실해졌다.
이에 김씨는 부산저축은행-KTB네트워크(現 우리벤처파트너스) 컨소시엄에 저축은행 매각을 시도하지만 과정이 원만치 못하자 제일화재를 통해 새누리저축은행에 180억원 증자를 단행하며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이어 김승연 회장이 구원투수로 나서 2008년 제일화제를 인수했다. 제일화재가 한화그룹에 인수되면서 100% 자회사였던 새누리저축은행도 함께 계열사로 편입됐다.
사실 업계는 한화가 새누리저축은행을 원해서 인수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어려운 M&A 환경에 놓인 누나 김영혜 씨를 배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새누리저축은행 인수가격을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한화그룹은 새누리저축은행주식 808만주(지분 93.95%)를 한화건설 등 한화그룹 5개 계열사를 통해 총 808만원의 가격으로 인수했다. 주당 1원에 산 셈이다.
이처럼 헐값에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던 건 새누리저축은행이 2008년 당시 회계연도에 754억원, 전년도 회계연도에 384억원 등 총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해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기 때문이다. 새누리저축은행 총부채는 2008년 회계연도 기준 5092억원으로 총자산보다 940억원 더 많았다.
한화그룹은 새누리저축은행의 주주인 한화건설, 한화엘앤씨(現 한화글로벌에셋), 한화테크엠(現㈜한화 모멘텀부문), 한화호텔앤리조트를 통해 대규모 유상증자에 이어가며 저축은행 살리기에 나섰다. 인수 이후 유상증자를 통해 들어간 비용만 3080억원에 달한다.
2011년에는 한화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성장에 힘을 붙였다. 당시 한화그룹은 사명 변경을 발표하며 “한화금융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계열사들과의 연계를 통해 다양한 상품과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1년 한화저축은행은 인수 3년 6개월 만에 2011년 회계연도 기준 약 3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인수 당시 49%에 달했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0% 미만으로 낮아지며 자산건전성도 개선됐다. 꾸준한 성장세에 힘입어 2020년에는 자산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한화는 그룹 홈페이지에서 한화저축은행을 '한화금융네트워크'라고 소개한다. 다만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인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등이 한화생명 산하에 포진된 것과 달리 한화저축은행만 대주주가 화학 제조업체인 한화글로벌에셋이다.
한화저축은행은 한화그룹으로 넘어오며 계열사 4곳이 지분을 나눠갖고 있었으나 2021년 한화건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테크엠이 보유 지분을 모두 한화글로벌에셋에 매각하게 되면서 한화저축은행은 한화글로벌에셋의 완전 자회사가 됐다.
한화글로벌에셋은 김동관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한화솔루션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즉 한화그룹 금융계열사가 김동원 사장 하에 있는 것과 다르게 한화저축은행만 김동관 부회장에 속해 있는 것이다.
2021년 한화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후계구도 완성을 위해 한화생명보험을 필두로 금융계열사 지배구조를 정리했는데 한화저축은행은 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한화그룹 금율 계열사 내에서 한화저축은행 비중이 크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에 한화저축은행 매각은 그룹의 승계 구도와도 맞닿아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위치가 애매해진 저축은행은 정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김동원 사장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로 그룹 승계 영역을 명확히 하는 셈이다.
그러나 2023년부터 흐름이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한화저축은행은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5.5% 감소한 60억원을 나타냈다. 순익 하락에 수익성 지표도 떨어졌다. 기업이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가를 나타내는 ROA는 전년 동기 대비 0.79%p 떨어진 0.60%, 순자산 대비 수익성을 나타내며 자기자본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냈는가를 보여주는 ROE는 전년 동기 대비 7.39%p 하락한 5.83%를 나타냈다.
건전성 지표인 NPL 비율은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오른 5.56%를 나타냈으며 연체율은 2.73%p 늘어난 6.98%로 집계됐다.
한화저축은행의 건전성 지표가 악화된 데에는 부동산PF가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화저축은행의 전체 대출은 1조 640억원이다. 이중 부동산 관련 대출 잔액이 4774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44.9%에 달한다. 부동산PF대출·건설업·부동산업 등 부동산 관련 총 연체율이 7.72%인데 그중에서도 부동산업 연체율이 9.57%로 10%에 육박한다.
최근 부동산PF 리스크 우려가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업계는 관련 대출 규모가 큰 저축은행의 수익성은 더욱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부동산PF는 여전히 리스크가 높은 상태"라며 "위험도가 가장 높은 브리지론 익스포저가 집중되어 있는 저축은행은 2024년에도 실적 저하 우려가 크다"고 전망했다.
여전히 자본잠식 상태라는 점도 문제다. 한화저축은행은 계열편입 이듬해인 2009년 말 100% 자본잠식 상태였다. 2010년 자본잠식률이 90%대로 떨어진 후 2014년 80%대, 2018년 70%대, 2019년 60%대로 수치가 떨어지며 개선되고 있지만 지난해 9월 말 기준 53%를 나타내며 여전히 절반이상은 자본잠식돼 있다.
국내 저축은행 79곳 중 30위권 안팎에 머무르는 애매한 업권 내 위상과 크지 않은 수익성, 과반 이상의 자본잠식 상태는 국내 재계 7위 대기업의 저축은행이라기엔 딱히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역시 핵심은 매각 가격이다. 한화저축은행은 꾸준히 매각 작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무산됐다. 한화가 제시하는 가격과 이견이 커 매각 과정 진행이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저축은행 업계는 일반적으로 PBR(주가순자산비율)을 활용해 기업가치를 책정한다. 과거 유진기업의 대주주적격성 문제로 매각된 유진저축은행(현 다올저축은행)의 경우 PBR 0.9배가 적용됐으며, 스마트저축은행은 약 1.2배, 대한저축은행은 약 1.4배 등이 적용돼 가격이 책정됐다.
과거 PBR 0.9~1.4배로 저축은행이 매각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화저축은행의 기업가치는 2023년 3분기 자본총계(1768억원)를 바탕으로 최소 1591억원에서 2122억원으로 계산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단순히 PBR뿐만 아니라 업계 내 지위, 수익성, 건전성 등을 고려해 가치를 판단한다.
한화로선 한화저축은행을 당장 매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저축은행 PF부실 문제로 인해 매각 가격은 고사하고 원매자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상상인저축은행 등 여타 저축은행 매물이 쌓여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그룹내 지배구조 변동을 통해 한화저축은행을 외부 매각이 아닌 김동원 사장이 맡고 있는 금융계열사 편입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홍지인 한국금융신문 기자 hele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