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슬기 기자
국내 면세점들은 어떤 점포에 얼마나 많은 유커가 방문했는지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다. 알고 보면 한 단체 관광객이 A면세점에 방문했다가 B면세점에도 가는데, 뉴스에서는 마치 한 면세점만 가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팬데믹 기간 수렁에 빠졌던 면세점업계가 유커 덕분에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장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유커들이 오고 있지만 예전만큼 못하다. 소비패턴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 한국에 오는 목적도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목적이 달라졌다니, 무슨 말일까? 과거 유커들은 쇼핑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SNS상에서 떠오르는 서울 성수, 압구정로데오 등 인기 맛집이나 핫플레이스를 찾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팬데믹 기간 못했던 성형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즉, 면세 쇼핑보다 다른 콘셉트로 한국을 찾는 유커들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유커들 여행 패턴이 달라지긴 했지만, ‘K-뷰티 역할이 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 SNS 입소문을 타고 글로벌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고, 각 면세점이 K-뷰티 브랜드 입점에 공을 들이고 있어서다.
하지만 업계 이야기는 또 달랐다. 최근 중국 C-뷰티(차이나 뷰티)가 급부상한 탓이다. 국내에서 C-뷰티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데, C-뷰티 인기 비결은 사실 국내에 있다. 한국 화장품 제조사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게 시작이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현지 인디 뷰티 브랜드를 만들고 품질력을 인정받았다.
중국인 특성상 ‘애국주의 소비’를 지향하는 데다 한국 제조사가 만든 제품인 만큼 굳이 K-뷰티 브랜드를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깔리면서 C-뷰티 인기가 급증했다.
다만, 블랙핑크와 BTS 등 관련 K-브랜드가 면세업계 ‘효자템’으로 통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K-컬처 힘을 또 한 번 실감한다.
국내 면세업계 느린 회복은 ‘달라진 유커’ 때문만은 아니다. 면세점을 대하는 내국인들 소비 태도도 달라졌다.
올초부터 코로나19 해제로 해외여행을 나가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면세점을 찾는 소비자가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고환율, 고물가로 면세 쇼핑 자체를 꺼려하고 있어서다. 면세 쇼핑을 하려고 해도 과거와 같은 큰 메리트를 체감하지 못하는 데다 차라리 해외에서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도 많아졌다.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온 30대 직장인 전모씨는 “과거엔 면세점에서 구매하면 큰 할인혜택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면세쇼핑 대신 차라리 여행에 돈을 더 투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애초에 면세점 아이쇼핑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면세점 이용할 일이 있다면 위스키나 와인 같은 주류 정도 살 것 같다”라고 말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이제 면세쇼핑 자체를 안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게 고민”이라며 “사업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지만 경쟁력 제고를 위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사정을 살펴보니, 엔데믹으로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게 요즘 면세업계 현실이다. 과거 ‘황금 알 낳는 거위’라는 면세업계 수식어도 옛말이 됐다. 외부환경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이 쉽진 않지만, 차별화된 MD와 혜택, 편리한 쇼핑 인프라 등 지속적인 투자가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슬기 기자 seulg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