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인한 금리 인상, 위험 자산 기피 현상에 따른 주식 시장 악화 및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는 최근 10년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최근 창업된 스타트업, 성장에 올인(All-in)한 플랫폼형 스타트업, 호황과 성장만 경험했던 새내기 벤처캐피탈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동 설한의 혹한을 경험하고 있다. 혹한기는 지속되고 있고 회복의 기운을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의 업-다운을 장기간 경험한 필자에게는 회복을 알리는 파랑새가 속속 보여진다. 시장과 산업의 헤게모니를 바꿀만한 거대 신기술의 등장과 10년의 호황기 동안 쌓아 놓은 벤처캐피탈 펀드규모, 약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회수 시장의 움직임 등이 대표적인 징조다.
그리고 인터넷, 모바일의 등장에 비견할만한 혁신 기술이 인공지능이다. 오픈AI, 구글, 메타, MS, 엔비디아 등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이고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IT 대기업들도 나란히 LLM(거대언어모델) 개발 경쟁에 나서면서 AI로 인한 혁신에 불을 붙였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과거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OS와 앱스토어/플레이스토어를 선보이자, 그 위에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게임, 애플리케이션 등을 선보인 것처럼 대기업들의 LLM이 속속 등장하자 이를 활용한 AI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피치북(Pitchbook)은, 2023년 1분기 미국 벤처투자 시장에서 생성형 AI 관련 투자는 107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발표했다. “최근 미국 벤처투자는 ‘AI or not’ 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Al 투자는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유니콘에 새로 등극한 스타트업 중 대부분이 AI 관련 기업이다. LLM 개발 업체인 앤트로픽, 코히어, 생성형 AI에 기반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인 딥플, 캐릭터(Character) AI, 런웨이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트렌드를 수개월 후행하는 국내 특성을 감안했을 때, 국내에서의 AI 열풍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미국 벤처캐피탈의 투자 여력은 1276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2021년 말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벤처투자 호황기에 결성된 신규 펀드가 급증한 반면, 2022년초부터 투자가 급감하면서 투자 여력이 쌓인 것이다.
국내도 비슷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2년에 신규 조성된 벤처 펀드는 10조7286억원으로 사상 최초로 10조원을 돌파했다. 2021년 대비해서도 무려 13% 늘어난 수치다.
올해도 벤처투자 펀드 조성액은 4.6조원으로 2021년, 2022년보다는 적지만, 코로나 이전인 2020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기술의 변곡점에 충분한 투자 재원이 확보되어 있다는 점은, 향후 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벤처투자가 급격히 회복될 것이란 의미다.
국내의 경우,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신규 상장이 대거 늘어나는 추세다.
상반기 신규 상장 기업은 33개로 최근 10년 평균(20개) 대비 66%나 많았다.
특히 신규 상장 기업 중 대부분이 코스닥 상장으로 벤처기업의 상장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유니콘 기업들의 상장이 이어지면서, 회수 시장의 회복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예측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스타카트가 상장에 돌입했고, 마케팅 자동화 솔루션 기업인 클라비오, 반도체 설계 기술 기업 ARM 등도 상장 대열에 올랐다. 이런 대어급 유니콘들이 성공적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할 경우, 전세계 벤처 생태계의 회수 시장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
거시경제 환경 악화가 지속되는 환경에서, 벤처 생태계의 회복을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급증하고, Covid-19 당시 각광받았던 비대면 플랫폼 기업들은 수익성을 보여주지 못해 추가 투자확보의 어려움과 기업가치의 하락이라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혹한의 얼음장 밑에서 회복의 징후도 속속 보이며, 벤처 생태계가 속속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도 명확히 보인다.
스타트업들 AI라는 새로운 혁신 기술을 장착하고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벤처캐피탈은 호황기에 확보한 투자 여력으로 혁신 스타트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회수 시장도 기업 공개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어, 유니콘들의 성공적인 IPO가 이뤄질 경우 빠르게 시장 심리가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밤은 깊으면 아침이 그만큼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땅은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비옥해진다.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은 다가오는 회복을 준비하며, 좋은 씨앗을 선제적으로 뿌리고, 비료를 주면서 정성껏 키워낼 시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분야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회복의 파랑새 움직임은 더욱 명확히 나타날 것이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