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가수 김수희가 발표해 유행시켰던 ‘애모(愛慕)’의 한 구절이다.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애처로운 모습을 담아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내 금융회사도 정부 앞에만 서면 이처럼 한없이 작아진다. 심한 표현으로 ‘고양이 앞 쥐 신세’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금융당국으로부터 호출 받는 순간 금융권 CEO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금융의 관치화’는 으레 반복되는 관행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 정부의 창조금융,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금융이 그랬다. 이들 정부는 공공성을 핑계로 금융을 정책 도구로 썼다. 그때마다 은행들은 금융의 수단화(手段化) 강요 앞에 순순히 굴종했다. 관리·감독의 키를 쥔 정부의 권세(權勢)는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치(官治)의 검은 역사’는 되풀이됐다.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정부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할 금융은 또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중이다. 시장 논리 대신 정부 입김, 입맛대로 만들어진, 누구에게도 시원하거나 따뜻하지 않은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진다. 대표적인 예가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청년금융 지원정책’이다.
기업 지원과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설립된 산업은행(産業銀行)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이다. 부산 이전이 설립 목적과 취지 실현에 부합하다면 내려가는 것도 맞다. 하지만 산업은행 역할을 생각하면 부산 이전은 비효율적이다. 기업 지원과 구조조정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대상 기업은 물론이고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 같은 부처와도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이미 지방으로 내려간 공공기관, 정부부처가 한 달에 절반 이상 서울을 오가고 있는 걸 보면 산업은행 앞날이 그려진다. 부산 지지율 공고화라는 정치적 의도라는 의구심도 커진다.
청년희망적금, 청년도약계좌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부터 정부는 금융지주 회장들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회에 불러들여 최근 강조하고 있는 ‘포용금융’ 정책에 부합하라는 러브레터(?)를 보냈다. ‘이 시대를 버티는 청년을 사랑해야지’라고 시작된 압박은 결국 은행에 고금리 혜택을 짊어지게 했다. 연 6%는 오롯이 금융권이 감내해야 하는 숫자다. 현재 상황에서는 예대차만 보더라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나름대로 현실을 반영해 우대조건을 걸어 이해타산을 맞추려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제대로 하라는 으름장뿐이었다.
결국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제히 조건 없는 연 6%를 맞췄다. 부담은 금융권이 몽땅 떠안는 구조인데 정부가 생색을 낸 탓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버는 격'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모든 세대에게 공감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 40세의 가장이 만 34세 청년보다 반드시 윤택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청년은 어렵다고 한다. 해가 지기 전에 그들을 위한 정책을 하나라도 더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혜택에 편입되지 못한 세대에게 들려줄 메아리는 없다.
그렇게 쨍쨍한 볕보다 더 창창한 그들을 응원할 청년도약계좌가 나왔다. 목돈 마련이라는 심리와 불안정한 시장 속 안정적인 고금리 혜택으로 시장을 관통하며 흥행도 했다. 다만 지난해 출시된 ‘청년희망적금’의 전철(前轍)은 흠이다. 최고 연 10%대 금리 혜택을 체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탈락자만 70만 명에 육박한다는 집계가 나왔다. 4명 중 1명이 적금을 깨며 중도하차를 했다는 것인데, 10만원 미만 납입자가 절반가량 된다 한다. 청년희망적금 전철을 밟을 것이 보이지만 멋쩍게 손 그늘로 볕을 가린다. 대신 희망이 고꾸라진 이들에게 ‘중복 가입이 가능하니 해지하지 말고 하나 더 들라’고 한다. 이게 될 일인지 싶다. 혜택에 편입된 세대에게도 여전히 관치의 도구로 전락한 금융은 가슴에 멍이다. ‘시절을 보내는 모든 그대’의 가슴이 멍울진다.
물론 정책은 올바른 거버넌스로 작동한다. 대의(大義)를 위해 금융권 희생이 불가피했다는 것도 맞고, 충분한 소통이 선행됐다는 것도 맞다. 그래도 금융의 도구화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
과거부터 이어지는 금융의 정치적 도구화 경고 목소리는 일각을 넘어 차곡차곡 쌓여 궤적이 된 지 오래다. 일선 금융사에서는 시장금리를 기준금리의 순리를 따를 수 없도록 개입해 물가안정으로 연결되지 못하게 하는 금융당국을 비판한다. 학계에서는 금융을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인들을 경계한다. 당국 내에서도 논리나 합리에 근거하지 않은 포퓰리즘이 반시장적 정책으로 굳어졌다는 지적이 조심스레 나온다.
정부 발(發) ‘관치 정책’의 부작용은 이미 나타난지 오래다. 소액생계비대출 ‘오픈런’에는 최고금리는 20% 인하가 많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논리에 반한다는 대부업계의 의견을 뒤로 하고 정부는 서민 부담 경감을 내세웠다. 결국 민생들은 불법사금융으로 향하고 있다.
지나친 금융 정치 도구화, 관치는 금융산업 경쟁력도 망가뜨린다. 우리나라가 싱가포르, 홍콩처럼 20년 동안 금융허브가 되지 못한 것도 규제라는 이름의 관치 영향이 크다. 해외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우리나라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마저 합리적이지 않은데다 정권 입맛 따라 정책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다. 최근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금감원장이 해외 IR행사에서 “규제·감독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말했지만 믿는 외국 투자자들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금융당국 한 마디에 대출금리를 내리고 예금 금리까지 높이는 금융권 모습은 관치 금융 끝판왕을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디지털 4.0 시대’ 챗GPT가 응대하는 시대에 인공지능 알고리즘까지 정치 도구화로 쓰일지도 모른다.
시장 흐름과 경제 논리에 맞는 정책이 요망(要望)된다. 불로소득이나 챙기는 부도덕한 집단처럼 몰면서 시장에서 결정되는 예금금리를 무리하게 올리라거나, 대출금리를 마구 내리라는 요구는 중단되어야 한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만큼 안정된 수익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금융 공급을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키워드는 ‘공정(公正)’이다. 수능에서도 반칙 없는, 사교육 없이 가능한 ‘공정수능’을 강조했다. 공정 국어사전 정의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공평하고 올바름’, 또 하나는 ‘일반사회의 공론에 따라 정함’이다. 금융의 도구화가 공정에 맞는지 되돌아볼 때다. ‘금융위기 데자뷔’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방향이 저 너머에 있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