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창 증권부장/부국장
“주가 조작 범죄는 감옥에 가도 남는 장사다.”
국내 증시에서 이른바 ‘한탕’을 노리는 작전세력들 사이에 공공연히 떠도는 얘기다. 범죄를 저지르고 설령 운 없게(!) 적발돼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실제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꽤 쏠쏠하다는 얘기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져 나오는 주가 조작과 같은 범죄의 유혹을 작전세력들이 쉽사리 떨쳐버릴 수 없는 근원적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최근 5년간(2017~2021년) 불공정거래 혐의자의 93.6%(1006명)에게 고발•통보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 가운데 과징금(행정조치)을 받은 혐의자는 불과 2.0%(22명)에 그치고 있다.
처벌수위가 미미하다 보니 불공정거래의 재범 비율도 2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위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9~2022년) 증시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 정보이용,주가조작,부정거래)로 제재를 받은 643명 중 23%(149명)는 재범 이상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4명 가운데 1명은 과거에 이미 한번 이상 불공정 거래로 적발되었는데 또 다시 범죄에 손을 댔다는 얘기다.
특히 2020년의 경우 불공정거래로 제재 받은 175명 중 30%인 52명이 재범 이상이었다. 이는 강도(19.7%), 폭력(11.7%) 등 다른 범죄의 재범률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 언론인터뷰에서 “범죄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기대 수익은 큰데 이에 대한 처벌 비용은 작다 보니 갈수록 범죄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증권 관련 범죄에 ‘관대한’ 한국과 달리 미국 등 외국은 증권 관련 범죄에 가혹하리만치 무서운 ‘철퇴’를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금융관련 사기를 벌였다가 당국에 적발되면 남은 여생을 꼼짝없이 감옥에서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이른바 ‘폰지 사기’로 유명한 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은 2009년 무려 150년형을 선고받고 2021년 82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그가 설령 살아 있더라도 지금 현재도 교도소의 차가운 쇠창살 아래 인생 말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이웃나라 중국도 증권관련 범죄에 관한 한 철저한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은 최근 개인간대출(P2P) 업체인 상하이다륜실업의 시안 얀 회장에 대해 주가 조작 혐의로 34억8000만위안(한화 약 67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으며 사건에 가담한 10여명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중국 증권거래 금치 처분을 내렸다.
지난 4월 소시에테제네랄(SG)발 주가 폭락 사태의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얼마전 대한방직 등 5개 종목의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지는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해 금융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이나 중국이 주가 조작 범죄에 대해 서슬 퍼런 ‘무관용’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주가 조작이 자본시장의 핵심원리인 신뢰를 밑바닥에서부터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금융감독원장은 최근의 주가조작 사태가 불거진 이후 여러 차례 불공정 거래세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면서 “거취를 걸겠다”고 말했다. 강직한 검사 출신인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
김재창 기자 kidongod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