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
이는 지난 1일 명동역점에 새롭게 오픈한 아성다이소의 풍경이다. 지난해 3월 문을 닫았던 명동역점은 약 1년 만에 다시 문을 열고 손님들을 받았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큰 매장으로 1~12층, 1650㎡(약 500평) 규모다. 엔데믹 이후 명동 상권에 활기가 돌자 기존 1~5층 규모에서 12층으로 규모를 키웠다.
독일에서 왔다는 리암(32)씨는 “이렇게 다양한 과자와 식품이 있다는 것에 놀랐는데, 가격까지 저렴해 또 한 번 놀랐다”며 “친구들에게 선물해줄 과자들을 잔뜩 구매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나지(25)씨는 뷰티 용품에 관심이 많은 듯 했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높은 질을 자랑하는 뷰티 상품들이 즐비해 있어서다. 나지 씨는 “가격도 저렴하고, 다양한 종류의 뷰티 상품이 있어서 구경하고 있다”며 “K-뷰티가 말레이시아에서도 유명해서 많이 사갈 계획”이라면서 웃었다.
실제로 방문한 아성다이소 명동역점의 손님 비율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성다이소 관계자는 “소비패턴을 파악하는 건 멤버십인데, 외국인들은 멤버십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다”라며 “현장에서 직원들이 체감하는 건 내국인, 외국인 손님이 반반 정도 된다. 물론 다른 매장보다 외국인 비율이 월등히 높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을 방문해보니 뷰티, 식품, 캐릭터용품을 판매하는 층에 외국인이 가장 많이 보였다. K-푸드, K-뷰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고, 한국의 캐릭터 용품도 이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보니 캠핑, 공구, 취미, 인테리어, 주방, 욕실, 식기 등 보다 주목도가 높았다.

▲ 외국인 관광객들이 새로 개업한 12층 규모 다이소에서 구경하는 모습. 사진 = 박슬기 기자
1년 전, 폐업의 아픔을 딛고 재개업한 아성다이소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이 배경에는 1000원으로 3조 신화를 이룬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박정부 회장은 45세에 ‘한일맨파워’라는 무역업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일본 전 지역을 뛰어다니며 개발한 상품을 일본 균일가숍에 납품했다. 박 회장의 상품 개발 능력과 가격 대비 높은 품질은 일본 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그는 국내에도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1997년 천호동에 13평 남짓한 아스코이븐프라자(現 아성다이소)라는 이름으로 균일가숍을 열었다. 그는 미국에서 직접 익힌 유통구조와 상품개발 과정, 스페인에서 본 저가상품의 소비패턴과 다양한 샘플 제품들, 중국에서 찾아다닌 생산라인들을 적극 활용했다.
이후 아성다이소는 1호점을 낸 지 4년 만인 2001년 초 100호점을 돌파했고, 2005년에는 300개, 2008년에는 500개를 돌파했다. 매출도 연 20%씩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에는 전국 970여개의 매장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섰다. 주력상품인 1000원짜리 물건을 10억개를 팔아야 나올 수 있는 숫자로, 작은 동네 매장 한곳에서 시작해 17년 만에 ‘1조 클럽’에 가입했다. 4년 후인 2018년에는 2조원을, 2021년에는 3조원 매출을 달성했다.
1997년 첫 매장을 연 후 25년 간 약 1만배 이상 성장했고,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다.
아성다이소의 성공요인으로는 ▲균일가 가격정책 ▲상품개발 능력 ▲물류센터 ▲품질관리와 물류혁신 ▲상품기획력과 상품공급력 등이 언급되지만 박 회장은 “생활용품 균일가숍”이라는 업의 본질에 충실했던 것이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30년간 ‘고객이 두렵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이어왔다. ‘국민가게’ ‘국민 브랜드’로 국민 생활의 일부가 되기 위한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에게 1000원의 가치는 남다르다. 그는 “1000원이야말로 성실함이 무엇인지, 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피력했다.
박슬기 기자 seulg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