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초 고팍스(GOPAX‧스트리미 대표 레온 싱 풍) 대표이사에 오른 레온 싱 풍 바이낸스(Binance·대표 창펑 자오) 아시아 태평양 총괄./사진=블록체인 위크인 부산(BWB) 2022 유튜브(YouTube) 갈무리
틈날 때마다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린 세계 최대 가상 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대표 창펑 자오)가 국내 5번째 원화거래소인 고팍스(GOPAX‧스트리미 대표 레온 싱 풍) 인수를 목전으로 두면서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고팍스는 전날 오후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산하 기구인 금융정보분석원(FIU·원장 박정훈)에 사업자(VASP·Virtual Asset Service Provider) 변경 신고서를 제출했다.
특정 금융 정보법 시행령에 따르면, 등기상 대표자나 임원이 바뀔 경우, 당국에 변경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최대 주주 변경은 신고사항이 아니지만 ▲명칭·대표자·소재지 등 신고인 ▲대표자·임원 현황 ▲사업 유형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 등의 내용이 바뀔 경우, 변경 신고할 의무가 있다.
앞서 고팍스는 이달 초 등기상 대표이사를 창업자인 이준행 대표에서 레온 싱풍(Leon Sing Foong) 바이낸스 아시아 태평양 총괄로 변경했었다. 현재 사내이사도 스티브 영 김(Steve Young Kim), 지유자오(Ji Yu Zhao) 등 바이낸스 측 인사로 구성한 상태다.
FIU가 이번 변경 신고를 수리할 경우, 바이낸스는 원화 마켓 거래소를 인수한 뒤 국내 시장에 진출한 최초의 해외 거래소가 된다.
지난해 해외 디지털 자산 플랫폼 ‘크립토닷컴’(대표 크리스 마스잘렉)이 국내 가상 자산 거래소 ‘오케이비트’(OKBIT·대표 라파엘드마르코이멜로)를 인수한 사례는 있지만, 오케이비트는 원화 거래를 지원하지 않는 코인 마켓 거래소였다.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 시장 진출을 노려온 바이낸스가 끝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전 세계 가상 자산 거래량 3위라는 점 때문인지 바이낸스는 2020년부터 계열사 ‘바이낸스코리아’를 설립하는 등 한국 직접 진출을 도모해왔다. 하지만 자금세탁 방지, 투자자 보호 등 금융당국의 규제 장벽이 높아 ‘국내 원화 결제 거래소’ 인수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바이낸스코리아도 2020년 말 문 닫았다.
방향을 튼 뒤 얼마 안 돼 2021년 5월엔 빗썸 인수설이 돌기도 했다. 빗썸(Bithumb·빗썸코리아 대표 이재원닫기이재원기사 모아보기)이 바이낸스코인(BNB)을 상장한다고 밝힌 시기다.
하지만, 이후 빗썸의 복잡한 지배구조 문제가 계속 대외적으로 불거졌다. 빗썸을 실제로 인수하려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설에 불과하지만, 업계 관계자에 의하면 한국 진출을 계속 노리던 찰나에 더 저렴하면서도 경영에 최대한 개입할 수 있는 고팍스가 최적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부터는 글로벌 블록체인 허브(Hub‧중심축)를 꿈꾸는 부산시와 협약을 맺고 부산 디지털 자산 거래소 설립을 돕고 있다. 기술, 인프라(Infrastructure·사회적 생산 기반) 등을 지원한다. 부산시는 바이낸스의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한 행정 지원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업계 다수 관계자는 이러한 바이낸스 행보에 부산시를 거점으로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려는 움직임 아니냐고 해석했었다.
세계 3위 가상 자산 거래소 ‘FTX’(임시 대표 존 J. 레이 3세) 파산 이후부터는 위기를 기회 삼아 확장력도 높였다. 유동성 위기를 겪는 가상 자산 기업에 손 내밀거나 인수전에 뛰어드는 식이다.
지난해 11월엔 부실기업을 돕고자 10억달러(1조2676억원) 지원을 선언했다. 일본의 가상 자산 거래소 ‘사쿠라 익스체인지 비트코인’(SEBC)과 인도네시아 가상 자산 거래소 ‘토코크립토’(Tokocrypto) 등 대규모 인수 소식을 곳곳에서 알렸다. 당시 인수 방식은 지분을 사들인 뒤 사내이사를 교체하는 전략이었다.
고팍스 역시 FTX 사태 후폭풍으로 거래소 내 예치 서비스인 고파이(GOFI)에 고객 자금이 묶이는 문제를 겪었었다. 당시 이를 해결한 것도 바이낸스였다.
이번에 고팍스 인수 작업이 완료될 경우, 바이낸스는 현행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국내 거래소를 통해 한국 시장에 다시 진출하게 된다.
고팍스는 이번에 가상 자산 사업자 변경 신고서를 제출함에 따라 앞으로 FIU 설득 작업에 전념할 전망이다. 신고 과정에서 변경된 임원진의 특정 금융 정보법상 금융 법령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신고가 반려될 수 있어서다.
현재 바이낸스의 불분명한 재무 정보와 자금 세탁 이슈(Isuue‧문제)는 고팍스가 넘어야 할 가장 가파른 산으로 꼽힌다.
바이낸스의 서류상 본사가 조세회피처인 케이맨 제도(Cayman Islands)라는 점과 자오 창펑 바이낸스 CEO 등 주요 임원들이 미국 검찰로부터 자금 세탁 공모 혐의를 받는 점은 금융당국이 인수 신고를 판단하는 데 있어 부담 요소로 작용한다.
무사히 신고 수리가 마무리되더라도 지난해 2월부터 고팍스에 실명계좌를 제공 중인 전북은행(행장 백종일닫기백종일기사 모아보기) 눈치도 살펴야 한다. 전북은행은 고팍스의 최대 주주 변경에 따라 자금세탁 방지 의무 이행 여부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
전북은행이 실명계좌 제공 계약을 철회할 경우, 고팍스의 가상 자산 사업자(VASP·Virtual Asset Service Provider) 지위가 박탈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업계에 의하면 지난달 중순 FIU와 고팍스, 전북은행 측은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금융당국은 이번 달 당국에 신고된 코인 마켓 거래소 20여 곳에 대한 종합 검사를 실시한 뒤 업비트(Ubbit·두나무 대표 이석우닫기이석우기사 모아보기) 등 주요 5대 원화 마켓 거래소를 포함한 기타 사업자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FIU가 이번 검사를 통해 거래소 내 자금 세탁 여부와 지난해 적발 사안에 대한 개선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 예상 중이다.
바이낸스가 고팍스 인수 시 가장 유력하게 활용할 것으로 전망되는 거래 방법 ‘오더 북’(Order book·매매 주문 장부) 연동 가능성도 업계 관심사로 떠오른다.
현행법상 실행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오더 북 연동이 이뤄지면 업계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주목되는 부분이다.
가상 자산 투자자들이 유동성에 따라 거래소를 바꾸는 경향도 강하고, 바이낸스가 상장 종류도 35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워낙 많아 고팍스가 한 번에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한편, 이번 인수 신고에 관해 고팍스 측은 마땅히 밟아야 하는 절차를 밟았을 뿐, 특별한 건 없단 입장이다.
고팍스 관계자는 “비즈니스(Business·사업) 구조가 바뀐 것 없고 이준행 대표도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는 등 등기임원만 변경된 것”이라며 “등기임원 변경 뒤 30일 이내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마땅한 절차를 밟은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고 수리는 45일 안팎으로 결론이 날 것 같다”며 “인수 절차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팍스 창업자인 이준행 대표는 레온 싱 풍 신임 대표와 함께 공동 대표이사를 맡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회사 운영은 이 대표가 하고, 레온 풍 대표는 주요 의사결정에만 참여하는 식이다. 경영상으론 바뀌는 게 거의 없다는 얘기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