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희 한화투자증권 대표 내정자(왼쪽)와 권희백 한화자산운용 대표 내정자./사진=한화그룹(회장 김승연)
다음 달이면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을 거쳐 한화투자증권과 한화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이 맞교체된다. 한화투자증권을 이끌었던 권희백 대표가 한화자산운용으로, 한화자산운용을 이끌었던 한두희닫기한두희기사 모아보기 대표가 한화투자증권으로 가는 것이다.
한화그룹 측은 이번 맞트레이드를 두고 “‘계열사 간 시너지(Synergy·협력 효과)’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금융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전략 방향을 견인하기 위한 인사란 설명이다.
실제로 보험·증권·운용 등을 두루 경험한 둘의 호흡은 성과로 증명된 바 있다. 권희백 한화자산운용 대표 내정자가 한화투자증권 사장직에 오른 2017년 당시 한두희 한화투자증권 대표 내정자는 한화투자증권에서 트레이딩(Trading·주식거래) 본부장을 맡았었다. 당시 두 대표는 주요 사업 부문 중 가장 높은 수익 증가율을 트레이딩 본부에서 기록하면서 회사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
업계에서도 두 회사 행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인사가 업계에서 흔한 일은 아닌 만큼 성과로 이어질 경우, 계열사 간 대표 맞교체가 하나의 트렌드(Trend·최신 경향)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지난달 30일 공시에 따르면, 한화투자증권의 2022년 연간 영업이익은 438억3620만7000원이다. 전년 대비 79% 줄었다. 금리 인상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위기 등 대외 불확실성이 늘어난 영향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133% 떨어진 –476억2672만1000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중국 국저 에너지 화공집단(CERCG ·China Energy Reserve and Chemicals Group Company Limited) 채권 부도 사태’ 민사 항소심에서 일부 패소한 영향도 작용했다. 선지급한 배상금 때문에 손실 규모가 커진 것이다.
작년 실적을 만회하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시장 변화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리스크(Risk·위험) 관리를 고도화해야 한다. 수익원 확보 노력도 필수적이다. 금융당국의 증권사 해외 진출 지원사격이 확대되는 가운데 베트남 등에서의 꾸준한 사업 성과도 요구된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자산관리(WM ·Wealth Management) 본부와 트레이딩(Trading) 본부의 경우, 안정적인 손익구조 구축을 통해 시장 영향과 무관한 흑자구조를 확보할 것”이라며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 본부는 부동산 PF를 넘어 다양한 수익 포트폴리오(Portfolio·자산 배분 전략)를 구축할 계획”이라 전했다. 이어 “ESG(친환경·사회적 책무·지배구조 개선) 경영도 지속해서 강화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한두희 대표 내정자가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는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유엔 ‘풍부한 경험과 성과’가 있다. 야구에서 위기 상황일수록 공을 많이 던져본 투수를 경기장에 내보내는 것과 같다.
삼성생명보험(대표 전영묵닫기전영묵기사 모아보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한화투자증권, 한화생명보험(대표 여승주닫기여승주기사 모아보기) 등을 두루 거친 한 대표는 한화자산운용 대표로 있는 동안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 사업을 강화하면서 ETF 운용 규모를 눈에 띄게 불려왔다. 지난해 연말엔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의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사전 지정 운용제도) 상품 승인 심사에서 종합 3위를 기록하는 등 눈에 띄는 약진도 펼쳤다.
특히 그는 한화그룹에서 이번 인사를 통해 강조했던 ‘계열사 간 시너지’를 몇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올해 2023년 국내 첫 ETF 신규 상장을 알리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가재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상무와 이봉진 한화투자증권(대표 권희백) 방산 전문 투자분석가(Analyst)와 함께했다. 한화그룹 방산 계열사를 비롯해 국내 주요 방산 업체를 골라 담은 ‘아리랑(ARIRANG) K방산Fn ETF’를 출시하는 만큼 계열사 전문가가 연합해 상품을 소개한 것이다.
디지털 사업에서도 계열사 맞손을 계속 잡아 왔다. 지난 2021년 7월 한화그룹 비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한화투자증권 지분 26.46%(5676만1908주)를 3201억원에 인수하면서 그는 “분산돼 있던 증권과 운용의 역량을 제도적으로 모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게 됐다”며 “‘디지털 자산운용사’ 성공모델이 될 것”이라 말했었다.
‘시너지’ 기조 아래 그해 연말, 한화자산운용은 우리은행(은행장 이원덕닫기이원덕기사 모아보기), 한화투자증권, 한화생명과 ‘디지털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한화금융 계열사 3사와 우리은행이 함께 디지털 신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첫 공동사업으로 이들은 우리은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한화투자증권의 주식투자 서비스를 탑재하는 것을 결정했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한화투자증권 한두희 대표 내정자에 관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보험사 투자 업무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높은 이해도를 보유하고 있다”며 “한화투자증권의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황에 대한 적시 대응으로 운용업계 내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임무도 부여받았다. 한화생명 투자부문장과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등 35년 한화 금융 계열사에서 다양한 역량을 쌓아왔기에 그에게 거는 그룹사의 기대도 큰 상황이다.
권 대표 내정자는 한화그룹 내에서 한 계열사를 가장 오래 맡아온 장수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로 평가받는다.
1963년 11월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경영 대학원(Wisconsin-Madison)에서 경영학 석사과정(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을 마친 그는 1998년 한화증권에 입사했다.
그 뒤 한화증권 자산운용본부장, 기획관리본부장, 한화생명 투자부문장, 한화투자증권 경영관리총괄 등을 역임한 뒤 2017년 3월 한화투자증권 대표에 올랐다. 이후 2019년 3월과 2021년 3월 두 번 연임에 성공하면서 장수 CEO 반열에 올랐다.
취임 당시 한화투자증권은 2015년 하반기부터 발생한 주가 연계 증권(ELS·Equity-Linked Securities) 관련 운용손실로 2년 연속 순손실을 보고 있었다. 권 사장은 실적 개선을 위한 구원투수로 투입돼 ELS 운용 규모를 줄이고 자산운용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과 함께 인력을 개편하는 등 위험관리 강화에 힘썼다.
주식매매 회전율 제한 완화 등 리테일(Retail·개인 금융) 부문에서 각종 제한 규정을 완화해 사업 경쟁력을 높여 취임한 해부터 한화투자증권을 매년 순이익을 달성하는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2021년엔 두나무(대표 이석우), 토스뱅크(대표 홍민택), 뮤직카우(대표 정현경) 등에 과감한 투자를 시행하면서 전년 대비 두 배가량 증가한 1418억원 순이익을 내기도 했다. 최근 발표한 지난해 실적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9% 감소하는 등 좋지 않지만, 이는 불확실성이 증가한 외부 환경 요인이 커서 해명의 여지가 있다.
금융 투자업계에 따르면, 권 대표가 이끌 한화자산운용은 최근 1호 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회사) 준비에 바쁘다. 다음 달 계열사 건물로 기초자산을 꾸린 ‘한화그룹 스폰서 오피스 리츠’를 유가증권시장(KOSPI)에 상장할 계획이다. 배당수익률도 6.85%로, 업계 최고 수준을 제공하려 한다.
이번 1호 한화 리츠는 새 사령탑에 오르는 권 대표 데뷔전이라 할 수 있다. 한화자산운용이 리츠를 출시하는 건 지난 2021년 10월 자산관리회사(AMC·Asset Management Company) 본 인가를 받은 지 1년 5개월여 만이다.
한화자산운용 관계자는 “그룹에선 현재 증시와 업황을 놓고 볼 때 이번 인사가 두 대표 전문성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권 대표도 실적과 경영 능력 등 리더십(Leadership·지도자 자질)에서 합격점을 받은 만큼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이어 “대체투자 시장은 다양성 측면에서 크게 열려있다”며 “전통 상품과 더불어 고객에게 더 다양한 투자 선택지를 제공하고자 리츠 등 대체투자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을 예정”이라 덧붙였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