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업계는 디폴트옵션 적용 가능 상품에 저축은행 정기예금이 제외된 것이 회사의 수신 자금 이탈을 일으킬 만큼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수신 잔액 중 퇴직연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들은 수신 조달 채널을 분산시켜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디폴트옵션 상품에 포함되지 않은 저축은행 정기예금의 경우 만기도래 시 고객이 별도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퇴직연금 전액 모두 디폴트옵션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은 은행 등 운용기관에 해당 금액을 반환해야 한다. 이때 반환한 금액만큼 수신 변동성이 발생하면서 저축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실상 수신만으로 대출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저축은행의 자금조달 창구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는 유동성 리스크 발생 가능성에 대해 ‘까봐야 안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업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게 내부에서 내린 결론”이라며 “디폴트옵션으로 갈 고객보다 개별 운용 지시로 남을 고객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승인된 디폴트옵션 상품은 펀드와 만기 3년 이상의 정기예금으로 구성돼 있는데, 대부분의 고객은 1년 단위 정기예금을 선호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업계 내 ‘디폴트옵션이 인기가 있을까?’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며 “특히 3년짜리 정기예금과 같이 금리 변동성이 큰 상품에 대해 고객의 반응은 떨떠름한 편”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상품 중 수익률이 가장 높은 게 저축은행 상품”이라며 “디폴트옵션에서 제외됐더라도 개인이던 퇴직연금사업자던 저축은행 상품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한 32개 저축은행의 퇴직연금 잔액은 ▲2018년 4분기 1조2558억원 ▲2019년 4분기 6조7848억원 ▲2020년 4분기 13조4692억원을 기록하며 매년 급증하는 양상을 보였다.
2021년 12월 말 20조8988억원을 기록하며 첫 2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2022년 3월 말 24조6329억원 ▲2022년 6월 말 28조5241억원 ▲2022년 9월 말 30조5378억원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탈에 따르면 현재 저축은행이 운영하는 퇴직연금 정기예금 상품은 총 517개로, 디폴트옵션에 포함되는 확정급여형(DC)은 168개, 개인형(IRP)은 174개다. DC·IRP형 중 1년 만기 상품은 157개를 차지했다.
저축은행 1년 만기 DC형과 IRP형 상품 중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곳은 OSB저축은행과 바로저축은행으로 금리 6%를 제공했다. 가장 높은 금리로 5.01%를 제공하는 시중은행에 비해 0.99%p 높았다.
저축은행 168개의 DC형과 174개의 IRP형 상품 가운데 6% 이상 금리를 주는 상품은 각각 20개에 이른다. 스마트저축은행 6.13%와 모아저축은행 6.1%, 드림저축은행 6.1%, 키움저축은행 6.05%, 푸른저축은행 6%를 제공한다.
5.9% 이상 금리를 주는 상품도 각각 16개에 이른다. 저축은행 입장에서도 퇴직연금은 수신을 확보하는 데 있어 편의성이 높다.
퇴직연금 자체가 B2B(Business to Business)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예·적금보다 한 번에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또 저축은행 퇴직연금은 대부분 제휴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 채널을 통해 자금을 유치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마케팅과 모집 인력 등에 쓰이는 영업비용을 아낄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고객이 보유한 퇴직연금이 5000만원을 넘길 가능성이 큰데 저축은행 상품을 디폴트옵션에 포함시킬 시 예금자보호한도를 초과해 운용될 수 있다”며 “당장 한도를 없애고 저축은행 상품을 제도에 포함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예금자보호한도도 5000만원이지만 은행은 자체 안정성이 높다 보니 퇴직연금 가입 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저축은행의 경우 디폴트옵션 포함으로 저축은행에 수신 유입이 많아지게 되면 개별 저축은행이 수용할 수 있는 수신고보다 공급량이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최대 3개사 상품을 넣을 수 있는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에 저축은행은 5000만원 한도가 있어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퇴직연금 취급 비중이 40% 이상인 저축은행의 경우 디폴트옵션이 시행됐을 때를 대비해 자금 이탈 가능성에 대한 유동성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업계에서 제시하는 대응책은 수신 조달 채널 분산을 통한 안정성 제고다. 저축은행 예금 조달 채널은 총 3가지로 창구와 모바일, 기관예금(퇴직연금)이 있다. 이때 기관예금을 제외하고 창구와 모바일 앱을 통한 수신 유입 비율을 높이면 된다는 의견이다.
저축은행 업계는 현재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에 디폴트옵션에 저축은행 상품을 포함시켜 달라고 지속 요구하고 있다.
그간 가입자의 무관심 등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90%가 낮은 금리로 운용되자 장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디폴트옵션이 도입됐는데, 이러한 도입 취지야말로 저축은행 상품을 디폴트옵션에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라는 주장이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현재 퇴직연금 패키지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게 저축은행 정기예금”이 라며 “6%가 넘는 이자를 제공하는 저축은행 상품을 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부수 연계 제도를 통해 5000만원 한도를 올리거나, 기존 저축은행이 갖고 있는 규제를 풀어주는 등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상품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고용부 장관 승인 등을 통해 안정성 등이 평가돼야 하는데, 아직 충족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신혜주 기자 hjs0509@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