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김관주 기자] 최근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와 게시판에서는 청약통장 해지를 고민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 속에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청약통장을 깨는 사례가 늘어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권은 고금리 예·적금을 속속 선보이며 청약통장 가입자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이미지 확대보기같은 기간 서울과 인천·경기지역에서는 1만명 이상이 청약통장을 해지했다. 서울지역 가입자 수는 전월 대비 1만161명 줄어든 622만8151명이다. 인천·경기지역은 881만3062명에서 880만1867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한 달 만에 1만1195명이 이탈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청약통장 가입자 이탈 행렬을 두고 고금리 여파에 부동산 경기가 악화된 영향으로 풀이했다. 기존 주택 가격은 하향 조정이 지속되고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미분양 아파트도 늘어서다.
지난달에는 전국 주택 가격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9월 전국 주택 가격(아파트·단독·연립주택)은 전월 대비 0.49% 내려갔다. 이는 2009년 1월에 기록한 -0.55% 이래 최대 낙폭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미분양 관리 지역으로 경기 안성시와 양주시를 신규 지정했다. 수도권에서는 약 2년 만에 미분양 관리지역이 등장한 셈이다.
뜨거웠던 아파트 청약 경쟁률도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 민간 분양 아파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8.6대 1로 조사됐다. 2021년 경쟁률은 19.5대 1이었다. 당첨자들의 가점 평균도 지난해 34점에서 올해 23점으로 11점 하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전날 ‘2023년 경제·금융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금리 급등에 따른 부채 상환 부담 증대로 매수심리 위축이 지속되며 가격 하락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주목”이라고 밝혔다.
한은 빅 스텝에 맞춰 은행들은 잇달아 수신금리를 올리고 있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5% 선에 근접했다. 저축은행에서는 이미 5%가 넘는 정기예금이 나왔다. 은행권에서 연 10% 이자를 주는 특판 적금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시중 자금이 은행 예·적금으로 대거 몰리는 ‘역 머니무브’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2022년 8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지난 8월 시중 통화량 평균잔액은 광의통화(M2) 기준 3744조1000억원으로 한 달 새 24조6000억원(0.7%) 늘었다. 시중 유동성이 다섯 달째 늘면서 M2 잔액은 사상 최대치다.
특히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에서는 34조1000억원 급증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약 21년 만에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M2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등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협의통화(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등 금융상품을 아우르는 통화 지표다.
시장에서는 청약통장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청약통장은 이율은 2016년부터 6년동안 1.8%에 머물러 있다. 이 같은 지적에 원희룡닫기원희룡기사 모아보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청약통장 이자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청약통장 이자율을 기준금리와 연동해 산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준금리 상승기에 청약저축 이자율도 함께 오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섣부르게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당 상품의 목적은 이자 수익이 아닌 공공·민영 주택 청약이기 때문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 팀장은 “최근 3년간 이어진 집값 상승기에 청약통장 신규 가입 건수가 늘었다. 해당 시기에 청약통장을 만든 사람들의 상당 부분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당장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미분양이 늘어났다고 해서 청약통장이 필요 없다고 예단하긴 이르다. 적어도 5년에서 10년 뒤의 주택 매수 시점을 봐야 한다. 청약통장을 깨고 높은 금리의 예·적금으로 가는 것은 단기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관주 기자 gj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