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는 국내에 처음 등장했을 땐 시장 반응이 지금만큼 좋지 않았다.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다. 변동성이 큰 장세 속 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과 차입을 이용하는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 ETF’나 하락장에서 수익을 내는 ‘인버스(Inverse) ETF’에 자금이 몰린 것이다.
이는 기존 펀드와 같이 분산투자 특성이 있는 데다가 비교적 낮은 보수와 편리한 주식거래 장점이 더해지면서 개인 투자자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해석된다.
최근 증시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물가 상승 및 금리 인상 등으로 증시 변동성이 큰 가운데 채권형·월(月) 배당형 ETF 등이 떠오르고 있다. 금리 인상분을 반영하거나 배당금을 매달 지급하는 방식으로 하락장에서 버팀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형’(K) 콘텐츠나 반도체 관련주 등을 담는 테마형 ETF도 지속해서 출시되는 중이다. 증가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ETF 수요에 맞춰 각 자산운용사는 비슷하면서도 차별화한 상품 설계로 투자자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시장 변화 속 ETF 시장은 갈수록 몸집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이사장 손병두닫기손병두광고보고 기사보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ETF는 ▲종목 수 622개 ▲순자산 총액 76조6850억원 ▲일 평균 거래대금 2조8000억원(올해 초 기준) 등으로 집계됐다.
이는 20년 전인 10월 14일 개설 당시 △종목 수 4개 △순자산 총액 3552억원 △일 평균 거래대금 343억원 대비 각각 155배, 215배, 83배 급성장한 수준이다.
ETF 시장 순자산은 지난해에만 42.1% 늘었다. 하루 ETF 거래대금은 약 3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하루 거래대금이 약 7조원 정도임을 비춰봤을 때 전 세계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 수준이다. 상장 종목 수론 6위, 순자산총액은 12위에 해당한다.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디지털ETF마케팅 본부장은 지난달 ETF 브랜드 명칭 교체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76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ETF 시장 규모는 지금 추세로 볼 때 5년 뒤인 2027년엔 약 200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국내 ETF 전체 순자산 순위에서 가장 큰 규모다. 기관 자금을 중심으로 레버리지나 인버스 등 단기 투자 상품까지 포함할 경우, 10조원가량 규모가 매일 움직이는 것과 같다. 하루 거래대금은 약 1조7000억원이다.
삼성자산운용을 바짝 뒤쫓고 있는 곳은 미래에셋자산운용(대표 최창훈·이병성)이다. 하루에 5700억원 정도가 거래되고 있다. 후발주자로 2006년에 처음 ETF 상품을 선보인 만큼 국내보다는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것에 무게를 뒀다.
국내 상장된 해외 ETF 191개 중 200억원 이상 유입된 상품 면면을 살펴보면 ▲TIGER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312억원) ▲TIGER나스닥100(279억원) ▲TIGER미국S&P500(224억원) 등 모두 미국 증시 상승에 베팅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 상품이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미국, 캐나다, 홍콩 등 전 세계에서 운용 중인 ETF 규모가 100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으며, 국내 ETF 시장점유율도 점점 키우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지난달 말 기준 ETF 순자산은 29조원대다. 지난해 말 26조원보다 3조원 확대됐다. 현재 ETF 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주식형 ETF 순자산은 16조7000억원 정도다.
그래도 삼성자산운용은 아직 건재하다. 같은 기간 순자산이 31조원대에서 32조원대로 1조원 늘었다. ETF 전체 시장에서 42%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식형 ETF 순자산은 15조6000억원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비해 약간 처져 있지만, 최근 KOFR 한국 무위험 시장금리를 바탕으로 한 KOFR ETF가 출시 5개월 만에 3조원 자금이 몰리는 등 1위를 수성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는 상태다.
선두권인 두 운용사를 향한 중견 운용사들의 견제도 불꽃 튀고 있다. 최근 삼성자산운용 부사장 출신의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가 ETF 브랜드명을 기존의 ‘KINDEX’에서 ‘ACe’로 바꾸면서 “판을 흔들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한두희닫기한두희광고보고 기사보기 한화자산운용 대표도 올해에만 희토류, 수소, 우주항공 등 10개 넘는 신규 ETF를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Tittle·자격)과 함께 상장시키는 등 트렌드(Trend·최신 경향)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올해 2분기 자산운용사 전체 중 61%에 해당하는 234개 운용사가 적자를 낼 만큼 수익원 확보가 어려운 시장 환경 속 ETF 시장점유율을 늘려 생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현재 ETF 순자산 점유율로만 놓고 보면 ▲삼성자산운용 32조원(42%) ▲미래에셋자산운용 29조원(38%) ▲KB자산운용 5조원(7%) ▲한국투자신탁운용 3조원(4%) ▲키움투자자산운용 2조원(3%) ▲한화자산운용 1조원(1%) 등 순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최근 각 운용사가 트렌드에 부합하는 ETF를 출시하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증시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바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단기 투자 경향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어떤 운용사가 고객에게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아닌 안정적인 수익이 돌아가도록 포트폴리오(Portfolio·자산 배분 전략)를 잘 구성하느냐가 생존에 있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