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부분 금고를 독점하고 있는 우리은행에 맞서 올해 서울시 1·2금고를 차지한 신한은행이 입지를 넓히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두 은행은 과도한 출연금 경쟁에서 벗어나 전산시스템을 비롯한 디지털 역량을 내세우는 등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금고지기 선정에 사활을 걸 전망이다.
28일 서울시와 자치구 등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는 구금고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기존 금고 사업자 계약은 올 연말 만료된다. 중구·은평구·양천구·성북구·구로구·서초구 등 6개구에서 금고 입찰 공고를 낸 상태다.
현재 서울시 자치구금고는 31개가 16조원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강서구·양천구·강남구·서초구·용산구·노원구 등 6개 구가 1·2금고를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19개 구는 1금고만 두고 있다.
은평구는 지난 12일, 성북구는 25일 각각 입찰 제안서를 마감했다. 구로구는 31일까지 입찰 신청서를 받는다. 나머지 자치구도 9월 중 제안서를 접수한 후 심의위원회를 통해 입찰 참여 은행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PT) 평가를 거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업무 취급약정 체결은 10~11월 중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제1금고 사업자는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를 관리하고 제2금고 사업자의 경우 기금을 맡게 된다.
올해 개정된 구금고 지정 정량평가 항목은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정성(25점) ▲구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20점) ▲구민의 이용 편의성(18점) ▲금고업무 관리능력(28점) ▲지역사회 기여 및 구와의 협력사업(7점) 등이다. 여기에 녹색금융 이행 실적(2점)이 올해 새롭게 추가됐다. 서울시금고 기준과 같다.
현재 서울시 자치구 금고 점유율 70%가 넘는 우리은행은 기존 금고수성을 넘어 추가로 계약을 늘리겠다는 목표다. 현재 우리은행은 18개 구에서 1금고, 3개 구에서 2금고 등 총 21개 구 금고를 관리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103년간 서울시 금고를 독점하면서 자연스레 구금고까지 맡아왔다. 서울시금고와 25개구 금고를 모두 독점한 적도 있다. 2018년 서울시가 복수금고제를 시행하면서 신한은행이 서울시 1금고를 유치해 독점체제가 처음으로 깨졌다. 위성호닫기위성호기사 모아보기 신한은행장과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우리은행장(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PT에 나서는 등 전면전을 벌인 끝에 신한은행이 1점 차로 1금고 지위를 따냈다. 올 4월에는 서울시 2금고 자리까지 신한은행에 내줬다.
자치구의 경우 2015년 신한은행에 용산구 1금고를 내주면서 독점 지위를 빼앗겼다. 하지만 2018년 당시 24개 자치구의 총 27개 구금고를 운영하던 우리은행은 신한은행에 서울시 1금고지기를 내준 상황에서도 대부분 구금고를 지켜내며 구금고 전통 강자의 입지를 굳혔다.
올해의 경우 우리은행 입장에선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관측이다. 신한은행이 서울시 1·2금고지기 자리를 모두 가져간 데 이어 인천시 금고지기 수성에도 성공하면서 기관 영업의 신흥강자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서울시 금고와 함께 구금고 업무를 장기간 도맡아오며 쌓아온 시스템 운영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구금고 지정 평가 항목에 지역사회 기여 및 구와의 협력사업 등도 포함돼있는 만큼 당근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공공기관 최다 주거래은행으로, 서울시 25개 구청 개청시부터 금고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25개 구청 중 20개 구청의 구금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 구금고 입찰전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서울시 1·2금고를 모두 차지한 데 이어 인천시 금고까지 수성한 기세를 몰아 구금고 수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 금고 유치 실적 등을 내세워 기관 영업에 적극적인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한은행은 강남구, 서초구, 강북구, 성동구, 용산구 등 5개 구의 1금고와 용산구의 2금고 등 총 6개 금고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총 3개 구금고를 운영하던 신한은행은 2018년 5개로 늘렸고 올해는 더 많은 구금고를 노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각종 기금 입찰에 대비해 기관 영업에 힘을 실어 왔다. 2017년 말 기관고객부를 그룹 체제로 격상했고 지난해 연말 임원 인사에선 박성현 신한금융지주 지속가능경영 부문장(CSSO)을 지주에서 3년 만에 다시 불러들여 기관그룹장(부행장)으로 선임했다.
기관영업 베테랑으로 꼽히는 박 부행장은 2018년 기관고객부장 재직 당시 서울시 1금고를 유치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2020년 말까지 서울시청금융센터장을 맡다 본부장으로 승진한 김호대 기관영업3본부장 역시 서울시 1금고를 따낸 주역 중 한 명이다.
진 행장은 박 부행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고, 신한은행 기관그룹은 달라진 평가 배점과 달라진 평가 배점 항목을 분석하는 한편 신한의 강점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2018년 서울시 금고 지정 입찰 과정에서 전산시스템 구축 비용으로 1000억원을 제시했다가 기관경고와 과태료 조치를 부과받기도 했지만 3년 만에 달라진 전략으로 금고 경쟁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지자체들은 과도한 출연금 등 은행 간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출연금 평가 배점을 줄이고 금리나 지역사회 기여도 등 다른 부분의 배점을 높이는 등 평가항목을 손질한 바 있다.
신한은행은 서울시 금고지기를 맡고 있어 전산시스템 등 구 금고와 연계할 수 있는 이점이 많아 상대적으로 자치구 금고 운영권 확보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서울시금고와 인천시금고를 따낸 데도 전산시스템과 디지털 역량이 관건이 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도전장을 낸다. 국민은행은 현재 노원구 1·2금고와 광진구 등 3개 금고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더 많은 구금고에 도전할 방침이다. 하나은행은 구금고를 맡고 있지 않지만 이번에는 경쟁력을 갖춘 곳을 일부 구에서만 선별적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