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총재 이창용)이 발표한 ‘2022년 2·4분기 중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7%,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증가했다./사진=통로이미지 주식회사(대표이사 이철집)
이미지 확대보기물가가 고공 행진함에 따라 전 세계 각국 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경기가 불안정한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
정부는 민간 소비가 늘고 있다는 이유로 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만, 시장은 다르다. 여전히 ‘경기 침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중이다. 하반기 대한민국 경제, 괜찮을까?
전날 한국은행(총재 이창용닫기이창용기사 모아보기)이 발표한 ‘2022년 2·4분기 중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7%,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증가했다. 시장 컨센서스(Consensus‧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모두 웃도는 수준이며, 8개 분기 연속 성장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규제 완화로 비내구재와 서비스 소비 등 민간 소비가 늘어난 점이 양호한 성적으로 이어졌다. 2분기 성장률에 대한 민간 소비와 정부 소비 기여도는 각각 1.4%포인트(p), 0.2%p였다. 소비가 2분기 성장률을 끌어올린 것이다.
한국 경제성장률 추이./자료=한국은행(총재 이창용)‧키움증권(대표 황현순) 리서치센터
이미지 확대보기시장 예상보다 나은 지표가 나와서일까. 정부는 현 경기 상황을 시장보다는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한덕수닫기한덕수기사 모아보기 국무총리는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에 관해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가 완화되면서 민간 소비가 많이 늘고 있다”며 “당초 한국은행과 정부가 생각한 정도는 안 되겠지만, 2% 중반 정도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내년 경제 전망은 어렵게 봤다. 그는 “내년은 중국 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이유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때문에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경제가 좋지 않을 것”이라며 “수출이 상당한 영향을 받는 데다 유가도 획기적으로 내려갈 것 같지 않다”고 예측했다. 그러면서도 “(연간 성장률이) 한 2% 정도 언저리 수준은 유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황상필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 역시 “남은 3‧4분기 0.3%씩 성장하면 올해 목표치인 2.7%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정부 입장에선 현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긍정적 면을 강조하는 것이 바른 방향일 수 있다. ‘두려움이 경기 침체를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김효진 KB증권(대표 김성현닫기김성현기사 모아보기‧박정림) 경제학자(Economist)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뉴욕 연방 준비은행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은 경기 침체를 전망했다”며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경기 침체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예일대학교 교수가 쓴 <내러티브 경제학>(Narrative Economics)을 언급했다. 해당 도서에는 ‘경기 침체 공포와 부정적 전망이 계속된다면 경제 체력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더라도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고 적시돼 있다. 즉, 두려움이 실제 경기 침체로 이뤄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과 행정부 관료들은 시장의 경기 침체 우려에 맞서고 있다. 지금 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연일 던지는 식이다. 시장과 반대로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현 상황을 극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시장 분위기는 ‘두려움’ 그 자체다. 국내 경기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엄습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학회(학회장 이종화)가 최근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국내 경제학자 39명 가운데 59%에 해당하는 23명이 국내 경기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불황+물가 상승) 단계에 들어섰다고 응답했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닫기허창수기사 모아보기)가 시장조사 전문 기관 ‘모노리서치’(Mono Research‧사장 이형수)에 의뢰해 27일 발표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출액 500대 기업 중 12대 수출 주력 업종을 영위하는 대기업 중 93%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하반기에도 지속될 경우, 수익성이 나빠질 것으로 추정했다.
증권가도 앞으로 국내 경기를 좋지 않게 보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대표 황현순) 투자분석가(Analyst)는 이날 관련 보고서를 통해 “올해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은 민간 소비 중심으로 예상보다 양호했지만,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면서 하반기는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최근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 영향과 물가 상승에 의한 실질 구매력 약화 등이 소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과 성장 기여도, 항목별 증가율./자료=한국은행(총재 이창용)‧키움증권(대표 황현순) 리서치센터
이미지 확대보기빨간불이 켜진 수출에 관해서도 의견을 냈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을 떠받쳤던 수출은 화학제품과 1차 금속 제품 등을 중심으로 3.1% 줄었다. 지난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대외 수요에 있어 주요 선진국 경기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는 탓으로 풀이된다. 김 투자분석가는 “미국이나 유로존(Eurozone‧유로 사용 지역) 통화 긴축 여파가 점차 수요 위축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는 만큼 수출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경기 침체 우려는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기선행지수는 현재 기준선 ‘100’을 밑돌면서 위축 국면을 나타냈다.
김 투자분석가는 “OECD 한국 경기선행지수와 경제성장률이 밀접한 흐름을 보였음을 고려할 때 경제성장률 둔화 가능성은 큰 상황”이라며 “연간 경제성장률은 2.5% 정도로 하반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대표 최알렉산더희문) 투자분석가도 “수출과 내수가 예상보다 잘 버텨주고 있으나 경기 둔화 우려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며 “경기를 떠받치던 민간 소비의 회복 탄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출 역시 3분기부터는 내림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문홍철 DB금융투자(대표 고원종) 투자분석가 역시 “세계 경제가 둔화 양상을 나타내면서 우리나라 경제 역시 불가피하게 갈수록 둔화하는 추세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서비스보다는 상품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있어 상품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Liquid Crystal Display) 등을 중심으로 그만큼 타격을 더 많이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내수 역시 한국은행의 ‘빅 스텝’(Big Step‧기준금리 0.5%p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다”며 “내수와 수출 모두 전체 경제 성장을 깎아 상황으로 가게 될 것”이라 관측했다.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기선행지수와 경제성장룔./자료=OECD(사무총장 마티아스 콜먼)‧한국은행(총재 이창용)‧키움증권(대표 황현순) 리서치센터
이미지 확대보기국제통화기금(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은 국내 경기 상황을 더욱 부정적으로 봤다.
IMF는 26일(현지 시각)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지난 4월 전망한 2.5%보다 0.2%p 내린 2.3%로 추정했다. 정부(2.6%)나 한국은행(2.7%)의 기존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이다. 특히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1%로, 기존 전망보다 0.8%p나 하향 조정했다.
세계 경제도 어둡게 전망했다. IMF는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각각 3.2%, 2.9%로 잡았다. 지난 4월 전망보다 0.4%p, 0.7%p 후퇴한 수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하는 부정적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2.6%, 2.0%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의 노무라금융투자(Nomura‧대표 토모유키후나비키)도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을 이유로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7%로 낮춘 상태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에 관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통상 5~6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며 “최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경기를 침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경기 침체에 따른 위험에 대응하고자 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내외 여건 변화로 인플레이션이 더 가속되거나, 이와 달리 경기 둔화 정도가 예상보다 커진다면 정책 대응의 시기와 폭도 달라질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신흥국의 환율상승 및 자본유출 압력 증대와 그에 따른 국제금융시장 상황 변화가 우리 금융·외환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