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권혁기 건설부동산부 부장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로 구성된 시공사업단은 기존에 예고한대로 이날을 기점으로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 유치권을 행사해 공사장 전체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둔촌주공은 현재 공정률이 52%에 달한다. 이미 절반 이상이 지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시공사업단이 바뀐다면 ‘사상 초유’라는 수식어가 붙게 될 전망이다. 시공사가 부도처리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해당 사업장은 ‘재건축 분쟁 백과사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듣고 있다. 그렇다면 둔촌주공 재건축 중단 사태의 본질과, 향후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이번 공사는 지난 2006년 11월 정비구역지정을 시작으로 2009년 12월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2015년 7월 사업시행인가 후 이듬해 시공사를 선정, 노후화된 5930가구 아파트를 헐고 1만1106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기로 했다. 공사비는 약 2조6000억원으로 책정됐다.
2019년 12월 착공됐는데, 당시 조합 측에서 기존 설계보다 가구수와 상가 건물 추가, 고급 자재로 변경 등을 요구하면서 공사비는 2조6000억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증액됐다. 조합 측은 임시 총회를 거쳐 증액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다만 전(前) 조합장은 총회 승인 이후 도장을 찍지 않고 있다가 2020년 6월 자신에 대한 해임안건 발의 당일 도장을 찍어 시공사에 보냈다.
현 조합은 증액 계약이 무효라며 2016년 계약서만 합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공사비 역시 2조6000억원이어야 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정확히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공사비가 변경되면 약 20.9% 정도 상승하는 셈이다. 보통 아파트 시공과 관련해 최초 계약 후 공사 완료까지, 20~30% 정도 공사비가 증액되는 편이다. 공사 당시 예상 비용과 달리 공사 진행 과정에서 자재비와 인건비 등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면, 각 호에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는데 계약 당시 에어컨은 구형이 될게 뻔하다. 이를 최신형 ‘무풍’ 에어컨으로 바꾸게 된다면 그 차액만큼 공사비가 올라간다. 또 건설사들이 특화 설계나 발전한 커뮤니티 등을 개발할 경우,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도 금액이 추가된다.
그런데 둔촌주공은 이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먼저 전 조합 측은 2019년 말 임시총회에서 총 가구수를 1만1106가구에서 1만2032가구로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상가도 추가로 요청했다. 또 자재 고급화 등을 포함해 공사 계약 변경을 총회에 상정했다. 당시에는 공사 초기였기 때문에 시공사업단은 이를 받아들여 설계를 변경했다.
설계도 변경부터가 비용 상승을 야기한다. 건설사들이 공개하지는 않지만 설계도 제작 자체만으로 수천만원에서 억 단위 수준이다. 둔촌주공과 같이 대단지인 경우, 또 공사가 시작한 이후 설계 변경은 가격이 더 높다.
당연히 공사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었고, 시공사업단은 최대한 조합 요구를 맞춰줬다.
그러나 시공사업단에 따르면 조합 집행부 측은 특정 업체 마감재를 지정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투표로 마감재를 선택한 것이고, 좋은 제품을 채용해달라는 것이지 특정 브랜드를 요구한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둔촌주공 사태를 놓고 보면 건설업계에 위기가 찾아온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아예 착공 자체를 하지 못하는 건설 현장도 늘어나고 있다.
먼저 공사비 상승이 가장 큰 문제다. 후문으로 공사현장에 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은 차라리 시공계약 해지를 바라고 있다. 최초 계약 당시보다 자잿값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조합과 시공단 사이에 갈등은 유책 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협력업체들은 손해를 줄일 수 있어 해지를 바라는 모양새다.
벌써 서울과 수도권 건설 현장에서는 ‘석재와 골재’ 때문에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양주 삼표산업 사고로 인한 채석장 작업 중단 때문이다. 돌 채취는 산을 깎아야 하고 지하수가 유출되는 등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심해 허가 자체가 어렵다.
또 채취 현장과 거리가 멀수록 자재비보다 운송비가 더 들기 때문에 제약도 크다. 양주 삼표 채석장의 경우 수도권 골재공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이에 자갈을 구하지 못해 큰 돌을 깨서 쓰는 현장도 있다고 한다.
서울숲 옆 삼표레미콘 공장도 철거중인 상황이다. 콘크리트는 믹서 후 현장까지 최소 하루 안에는 도착해야 굳지 않고 공사현장에 적절히 쓸 수 있어 너무 멀면 안되는데, 거리에 따라 운송비가 가중돼 공사비가 증가된다. 모래나 콘크리트 등 골재공급이 늦어지면 자연스럽게 공기지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건설사들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철근콘크리트 업체들은 자재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건설현장에서 공사를 전면 중단(셧다운)을 선언하기도 했다. 철물과 각재, 합판 등 핵심 자잿값이 작년 대비 50% 이상 상승했고 인거비 역시 올라 도산 위기라는 주장이다. 시멘트와 레미콘사들도 단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민간 공사 계약서에 명시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이 불공정 계약에 해당한다는 국토부 유권해석으로 불이 붙었다. 그동안 민간 공사에서는 최초 계약 당시 단가를 기준으로 자재를 공급해 왔다.
시공사가 발주처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 되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분양가를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어 시행사와 시공사 간에 갈등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자재대란과 공사비 증액 문제는 분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지난달 분양 예정단지 44곳 중 20곳만 실제 분양이 이뤄졌다. 가구수로는 총 2만6452가구(일반분양 2만3446가구) 중 1만1258가구(일반분양 9512가구)만 분양됐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건설사들과 협력업체들은 자재난과 공사비 상승으로 곡소리를 내고 있고, 조합 측과 갈등으로 준공일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 조합원들, 예비 입주자들이다.
권혁기 기자 khk0204@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