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이 대답했다. “천하는 천자(天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만백성(萬百姓)들의 것입니다. 그런 천하의 이득(利得)을 모든 백성과 함께 나누려는 자가 세상을 얻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문왕이 감복(感服)했다고 한다.
요즘 이재명(李在明)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금융정책 관련 대선 공약(公約)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국가의 미래(未來)를 걱정하고, 국민을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금융산업(金融産業)의 선진화 척도(尺度)로 ‘독립성(獨立性)’이 줄곧 거론된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라는 특수성(特殊性) 때문에 정치권의 영향력에 자주 휘둘린다. 후진국일수록 금융의 독립성이 무너지고 그 틈을 포퓰리즘이 비집고 들어온다.
‘기본대출권’과 ‘노동이사제’ 그리고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공약은 그래서 후진적이다. 그 중에서도 금융권 팔목을 비틀어 신용점수와 관계없이 누구나 저금리로 대출을 해준다는 ‘기본대출권’은 대표적 예다.
이 후보의 ‘3대 기본 시리즈(기본소득(基本所得)·주택(住宅)·금융(金融))’ 공약 가운데 기본금융에 등장하는 ‘신개념(新槪念)’이다. 대출에도 기본권(基本權)이 있다는 생소한 논리다. 정부가 보증(保證)을 서고 은행들이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0만원까지 연 1~2% 저금리로 빌려준다는 게 골자(骨子)다. 만기 10~20년 동안 마이너스통장처럼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저신용자(低信用者)들에게 기본대출권을 보장함으로써 금융불평등(金融不平等)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은 예금자의 돈을 받아 대출하고, 원금(元金)과 이자(利子)를 잘 회수해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제공하는 게 기본이다. 고신용자는 대출금리가 낮고, 저신용자는 대출금리가 높은 건 역시 시장경제(市場經濟)의 상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후보의 기본대출권 공약은 금융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포퓰리즘이자 정부의 서민금융(庶民金融) 상품을 불신하는 것과 같다. 오죽하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보증을 넣어 근로자의 저리대출을 지원해주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을까.
민담(民譚)에 등장하는 소위 ‘의적(義賊)’들은 법률적 관점에서 보면 그냥 절도범(竊盜犯)이다. 그들은 곡식을 백성에게 뿌린 덕에 인기를 얻었다. 선심성(善心性) 공약이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콘텐츠가 없는 후보일수록 퍼주기 공약의 유혹(誘惑)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농어촌 채무탕감(債務蕩減)의 실패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 무분별한 부채조정은 채무자의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과도한 이자율 개입은 저신용 서민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모는 이른바 풍선효과(風船效果)를 초래한다. 대출자에게는 선거를 앞두고 버티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선한 채무자에겐 상대적 박탈감(剝奪感)을 불러 경제적 효율성과 형평성, 금융의 자기책임성과 신뢰성을 저해할 뿐이다.
지키지 못할 공약으로 국민을 현혹해 권력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주나라의 문왕(文王)처럼 천하를 얻으려 하기보다 ‘천하는 만백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哲學者) 칼 레이먼드 포퍼(Karl Raimund Popper)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The attempt to make heaven on earth invariably produces hell)라는 말이 나온다. 선심성 정책은 잠깐 통증(痛症)을 멈추는 진통제(鎭痛劑)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처방전이 될 수 없다. 일본의 오랜 경제침체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낳은 산물이다. 표만 바라보는 공약으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