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전하경 기자
올해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와 관련해 한 보험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올해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지 벌써 13번째, 13년째다.
올해 마지막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는 가상자산법안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기사 제목도 매년 반복되고 있다.
‘N년째’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는 매년 국회에서 표류되고 있다.
작년에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12년째 좌절’, 재작년에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11년째 좌절’. 단순히 법안 문턱을 넘지 못한 ‘13년째’는 사실상 ‘국민이 불편하게 실손보험금을 청구한지 13년째’, ‘너무 불편해서 실손보험금 청구 포기한지 13년째’라는 말이다.
실제로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금 청구하기가 힘들어 청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등을 포함한 소비자단체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최근 2년간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관련 인식’을 조사한 결과 최근 2년 이내에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전체 응답의 47.2%로 절반 가량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구 포기 사유로는 진료 당일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해서, 증빙서류 보내기 귀찮아서, 진료금액이 적어서 등이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되면 일일히 서류를 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전산에 입력된 정보가 있어 실손보험금 청구가 손쉽게 가능해진다. 소액이라도 국민이 보험 보장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셈이다. 3900만명 실손보험 가입자가 자신이 가입한 보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게 된다.
국민 편의 증진 제고에 도움이 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안이 계속 표류되고 있는건 의료업계 반발 때문이다. 의료업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를 지난 5월 촉구한 바 있다.
의료업계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하게 되면 환자 진료기록 해킹 위험이 커져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류를 떼줘야 해 환자를 진료, 치료가 본업인 의사 행정 부담도 가중된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의료비 증빙서류를 전송해줘야하는 의무만 안게 되며, 자료 전송과정에서 환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고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의사가 법적분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국민 편익을 증진하지만 시민단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 등 주최로 열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으로 제기된 보험업법 개정안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높다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참여한 장여경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민감정보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 등은 정보주체에 대한 프로파일링 처리, 나아가 보험금 지급 거절 등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엽 금융위원회 보험과장도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을 운영하면서 청구 전산화 시스템이 이미 다 있다”면서 “정보 유출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을 한번 실손보험 청구에 활용해보자는 게 실손 청구 전산화”라고 반박했다.
정치권 문턱을 넘지 못하는건 선거철과도 연결되어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표가 큰 의사단체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또 불편함은 국민들이 N년째 지고 있다. 국민 편익을 인질로 둔 N년째 줄다리기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전하경 기자 ceciplus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