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자회사를 통해 보험금을 산정하는 이른바 ‘셀프 손해사정’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보험사가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할 때 50% 이상 자회사에 몰아주면 선정 이유나 평가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고 공시해야 한다. 또 소비자가 직접 선임하는 독립 손해사정사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보험사의 설명의무가 강화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4일 보험금 지급체계 정립과 소비자 권익 확대를 위해 공정성·객관성에 중심을 둔 ‘손해사정제도 개선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손해사정은 보험금 지급 과정의 첫 단계로 사고 발생 시 원인과 책임 관계를 조사해 적정 보험금을 사정·산출하는 업무다. 일반적으로 보험금 지급 결정은 서류심사만으로 이뤄지나 손해액에 대한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 손해사정을 한다.
하지만 현행 손해사정제도는 보험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전체 보험 민원에서 보험금 산정·지급, 면부책 결정 등 손해사정 관련 민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 41.9%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손해사정의 출발점인 손해사정사 선정단계부터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해나가기로 했다.
우선 보험사가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할 때 지켜야 할 세부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도록 의무화한다. 보험사는 업무 전문성, 내부관리 수준, 보험금 분쟁발생 빈도 등 선정·평가 기준을 사전에 정하고, 자회사와 비(非)자회사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평가해 위탁대상을 선정해야 한다.
위탁 건수의 50% 이상을 자회사에 위탁할 때는 선정·평가 결과 등을 이사회에 보고 후 공시해야 한다. 보험사가 손해사정의 상당 부분을 자회사에 위탁함에 따라 독립성과 객관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금융당국은 또 보험사가 보험금 삭감을 유도하는 항목을 내부 고용 및 위탁 손해사정사의 성과지표로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기로 했다. 보험금의 삭감 규모·비율, 손해율 등과 관련한 고정된 목표비율을 제시하면서 목표 달성도를 급여, 위탁수수료, 위탁물량 등에 반영하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한다.
보험사에 유리한 손해사정을 강요하는 등 보험사의 위탁손사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제재 근거도 마련한다.
소비자가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는 '독립손해사정사'도 활성화한다. 금융당국은 소비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때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독립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규정하기로 했다.
보험사는 소비자가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한다는 점도 설명해야 한다. 소비자가 보험사의 동의기준을 충족하는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려는 경우에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특정 당사자에게 유리한 손해사정을 금지하고 보험사·계약자 등이 손해사정사의 업무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하기로 했다.
손해사정의 책임 강화를 위해 의무위반 제재 근거도 신설한다. 손해사정사가 업무절차, 이해상충 및 불공정행위 규정 등 법령상 의무를 위반할 경우 최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의료자문을 통한 부당한 보험금 삭감도 막는다. 소비자가 보험사의 의료자문 결과에 이의가 있으면 보험사는 제3의 의료기관에 보험사 비용으로 추가 의료자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하도록 의무화한다.
보험사는 의료자문 의뢰에 대한 책임성 강화를 위해 ‘내부 의료자문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분기별 1회 의상 개최해야 한다. 또 의료자문제도가 보험금의 거절·삭감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의료자문 대상 선정·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중 보험업법 개정안 제출 등 주요과제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며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 하위법령 개정사항은 법률 개정 이전이라도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