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사장).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은 4일 이사회를 열고 2조6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869만주를 소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각으로 SK텔레콤 발행주식은 8075만주에서 7206만주로 줄어든다. 소각 예정일은 오는 6일이다.
이번에 소각하는 자사주는 전체 발행주식의 10.8% 규모로 사실상 전량 매각에 가깝다. 국내 4대 그룹 자사주 소각 사례 중 발행주식 총수 대비 물량으로는 최대이며, 금액으로는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약 2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 바 있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의 보유한 자사의 주식을 소각해 유통 주식 수를 줄이는 행위다.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주들이 보유 중인 기존 주식의 가치는 커져, 주가 상승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SK텔레콤은 전 거래일 대비 3500원(1.15%) 상승한 30만7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상승폭은 크지 않았지만, 향후 주가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론적으로는 주가가 최소 12% 정도 상승할 수 있는 호재”라고 평가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번 자사주 소각은 지난 4월 인적분할 추진 발표에 이어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SK텔레콤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라며 “선진화된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그룹 차원에서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경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이번 SK텔레콤의 자사주 소각을 두고 예정된 행보라고 평가했다. ㈜SK와의 합병 시나리오가 지속 등장하는 가운데, 주주들의 가치 희석 우려를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SK텔레콤은 지난달 SK텔레콤을 사업회사(존속회사)와 투자전문회사(신설법인)로 분할하는 인적분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기존 통신사업은 존속회사에 남겨두고, SK하이닉스·11번가·ADT캡스·티맵모빌리티 등 비통신사업은 투자전문회사에 편입시키는 방안이다.
당시 SK텔레콤 측은 “이번 인적분할의 취지는 통신과 더불어 반도체, 뉴 ICT 자산을 시장에서 온전히 평가받아 미래성장을 가속화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의 인적분할 계획이 발표되고, 일각에선 ㈜SK와 투자전문회사의 합병이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나왔다. 신설회사와 ㈜SK와의 흡수합병을 통해 SK하이닉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 그간 손자회사로서 제한된 투자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SK텔레콤은 합병설에 대해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추후 합병을 추진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이번 자사주 소각을 기점으로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고 해석된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를 ㈜SK의 자회사로 두기 위해 이번 분할을 결정했다고 믿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김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두 회사 합산 시총은 지금보다 커질 수 있지만, 분할 전후로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의 적정가치에 대한 시장의 다양한 해석으로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SK텔레콤은 소각 후 잔여 자사주 90만 주에 대해 “향후 ‘구성원 주주참여 프로그램’과 기 부여한 스톡옵션 등에 중장기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은경 기자 ek7869@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