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닫기이동걸기사 모아보기 산업은행 회장이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쌍용자동차에 조건부 자금지원 의사를 밝혔다. 흑자 전환 전까지는 쟁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기업의 존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업성 평가를 내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릴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회장은 12일 온라인 신년 간담회에서 쌍용차 지원 문제와 관련해 “흑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체의 쟁의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해달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단체협약을 1년 단위에서 3년 단위로 늘려서 계약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구조조정 기업이 정상화되고 흑자를 내기 전에 매년 노사협상한다고 파업하고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등 자해행위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이런 일은 앞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딜이 종료되는 한 추가 지원은 없고 쌍용차와 새로운 대주주로 들어서는 잠재적 투자자가 협의해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기에 쌍용차 노사 간 불협화음으로 인한 자해행위는 없기를 바란다”며 “사업성 평가와 함께 두 가지 전제조건이 제시되지 않으면 산은은 단돈 1원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쌍용차 노사를 향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을 놓치면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며 “투자가 성사되더라도 결실을 못 맺고 다시 한번 부실화하면 그것으로 쌍용차는 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쌍용차 노사와 잠재적 투자자가 협의해서 기업 존속 가능성을 담보할만한 협상 결과를 만들고 사업성 평가를 제시해달라”며 “사업성이 부족하면 자금지원을 거절하겠다”고 경고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절차에 대해서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고 밝혔다. 이 회장은 “양 항공사 통합시나리오는 내년 여름쯤부터 항공업이 정상화된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코로나19 백신이 잘 보급되고 코로나19가 조기에 종식되면 비용은 덜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내년 여름 이후에도 항공업 정상화가 안되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 항공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한항공은 이달 중 16개 국가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통합하더라도 세계 10위권, 양사 운송량을 단순 합산해도 7위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제한은 노선별로 문제가 생길텐데 국적 항공사 주력 노선이 대부분 싱가포르, 홍콩, 런던, 뉴욕 등 대도시이고 이곳은 워낙 취항하는 항공사가 많아서 경쟁이 심하고 독과점 논란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지난 6일 대한항공 임시주주총회에서 발행주식 총수를 기존 2억5000만주에서 7억주로 늘리는 정관 일부 개정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안건은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 가결됐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실사 없이 계약이 진행됐다고 국민연금이 지적했는데 대한항공은 동종 영업을 영위하고 있고 실사 없이도 공시자료를 통해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 극복과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기를 놓치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계약이 해지될 가능성은 매우 낮고 대한항공에 불리하다는 국민연금의 주장도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산은 입장에서는 (항공사 통합) 명분이 퇴색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서는 “올해 3월 말까지는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현대중공업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크 폐쇄, 인력 감축 등 생산 능력을 줄이는 방안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를 두고서는 법률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라며 배상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 회장은 “기존 방침에 변화가 없다. 배상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금감원이 불완전 판매라고 한 것은 논리적인 의미보다는 정치 또는 포퓰리즘적인 판단이 아니었나 우려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법률적으로 종결된 사안을 번복하는 것은 대한민국 금융사에서 굉장히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며 “대법원 판결이 틀렸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가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내 손으로 집행하는 정의만이 선이라는 건 위험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키코는 더이상 문제가 안 됐으면 한다”며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미래를 걱정해야 할 텐데 과거 일을 갖고 자꾸 떠들면 언제 새로운 일을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은의 설립목적에 ‘고용의 안정·촉진’을 추가하는 내용의 산은법 개정안이 발의된 데 대해서는 “고용 안정·촉진은 정상화 과정에서 이행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정부와 협의해서 해야지 일방적으로 산은법에 들어가는 것은 우려된다”며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KDB생명 ‘헐값 매각’과 관련한 논란에도 적극 반박했다. 이 회장은 “매각 금액이 당초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하더라도 지금 매각 안 하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을지 판단해야 했다”며 “KDB생명 매각가 2000억원은 생명보험업계와 인수합병(M&A) 시장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시장에서 결정된 것으로 적정하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흑자로 전환한 현시점이 매각 적기고 앞으로 부정적 영업환경이 예상되기 때문에 팔 수 있을 때 파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