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이야기한 히포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의학자였음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시의 예술은 지금의 예술이 아니라 기술과 의술이었다.
경계는 모호하나 확연히 다른 예술과 과학의 구분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미술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술자였고 발명가였다. 실행됐다는 근거는 없지만 그는 낙하산을 고안하고, 행글라이더를 그렸으며, 바람을 이용한 방아를 개발했다.
그렇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과학자라거나 연금술사라 하지 않는다. 지난 과거를 되짚어 ‘~~하였더라면’이 현재를 이야기하는 가장 잘못된 역사 추론일 수 있지만, 1841년 미국의 화가 존렌드의 주석튜브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인상주의는 더 나중에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과학과 예술의 경계는 모호하다. 특히나 현대미술에 와서는 과학과 예술의 상관관계가 필수적이다. 기계문명이 없었다면 현재의 미디어아트나 컴퓨터를 활용한 예술품이 생산될 수 없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나 여타의 키네딕과 미디어아트가 현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불어 발명가와 예술가의 경계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호하게 됐다.
과학(발명품)과 예술(예술작품)의 구분점에서는 모양중심인가 시각을 벗어난 의미의 것도 포함할 것인가로 해결이 가능하다. 예술작품은 모양을 포함한 사상적 사유적, 사회적, 철학적 의미 등을 포함한 생각 사용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모양(模樣)은 익히 알려져 있거나 기존에 사용처 등에 대한 의미가 포함된 겉모습이거나 사물의 외양을 본뜬 평면의 윤곽을 말한다.
발명은 없던 모양을 만들지만 창작은 생각을 보여준다. 그래서 모양을 그려놓고 예술의 전부이거나 대다수의 예술성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레오나르도의 행글라이더 그림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발명품으로 포함돼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과학과 예술의 구분점에 있어 문양(文樣)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문양은 모양이 아니다. 문양(紋樣)과 문양(文樣)을 함께 쓰기도 하지만 문(紋)은 사(絲)+문(文)의 합성어로서 완결된 의미의 최소단위로 쓰이는 글(文)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상태를 말한다.
문양(文樣)이거나 문양(紋樣)은 사물(물체)과 사물(물체)의 겉에 나타나있는 무늬를 합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그릇은 모양이면서 문양이다. 그릇이라는 것은 무엇을 담기 위한 의미가 이미 포함된 물체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발명과 다른 점은 문양(文樣)에 시대와 사회를 포함시킨다. ‘그냥 그래’ 혹은 ‘원래 그래’라고 하는 방관자적 자세 혹은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형이상학(形而上學)에서 문양에 대한 관찰자 시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역사에서도 인상주의가 태동하기 전 1667년 아이작 뉴턴이 바라본 사과에 의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화되고 바뀌게 된다.
우주질서를 수학적 계산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신 중심의 세상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의 변화가 일어난다.
서양미술사에서 신의 이야기나 로마신화가 들어있는 모양은 무척 많다. 르네상스 이전에 그려진 그림의 상당수가 신화 혹은 교회와 관련 있는 그림들이다. 신이나 종교가 다스리는 세상을 살다가 뉴턴의 사과 이후가 되면 인간이 세상을 만들고 경영하는 시대가 된다.
과학은 사용하는 손이, 예술은 이를 사용할 생각이 필요
과학은 사용하는 손이 필요하다. 예술은 그것을 사용하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손으로 사용되는 물건이 수억만 가지가 되듯이 생각으로 쓰여지는 사유방식이나 철학 등 또한 수억만 가지가 넘는다.
옛날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어느 날 사과나무 밑에서 하늘을 쳐다보는데 사과가 떨어졌을 것이다. 하늘에 뜬 달은 안 떨어지는데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에서 중력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세상을 운영하고 사람이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기를 요구하는 시대에 밀레(프랑스, 장-프랑수아 밀레, 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를 비롯해 도미에(프랑스, Honoré Daumier, 1808~1879), 쿠르베(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와 같은 이들이 사람 사는 모습 그대로를 그리기 시작한다. 과학과 예술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본연의 모습이다.
뉴턴이 사과를 가지고 신의 영역을 도전했던 1687년에서 100년쯤 지나 1781년 즈음이 되면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라는 사람이 이성(理性)이라는 것을 찾아낸다. 이것과 저것, 필요와 불필요, 옳음과 그름 등에 대한 대별 등을 인간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소위 말하는 현대미술의 시작이다.
신의 이야기를 담는 문양을 그리다가 갑자기 인간의 생각이나 이성을 생각하게 된다. 생각이나 이성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 지가 절대정명의 순간이다. ‘너도 사람이야. 생각할 수 있어.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해!’라는 계몽주의적 생각을 보여줄 방법이 묘연하다. 사람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찌하면 보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렇듯 서양은 1800년경이 되어서야 시각이미지에 사람이야기를 담기 시작한다. 동양은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공자가 사람중심의 세상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기원전부터 사람이 먼저가 되어 있다. 동양의 문자인 한자는 상형문자이다.
동양에서는 글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기원 전부터 그림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상형문자(象形文字)는 말 그대로 물건의 모양을 본뜬 그림문자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안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이게 하는’것임에 분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은 그 기준이 없다.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잘’ 혹은 ‘잘못’을 판단하지 못한다. 현대예술은 예술작품보다는 예술가의 정신과 사상이 더 중요하다.
과학과 더 멀어지는 시점이다. 예술가의 삶을 과거형으로 기준하면서 현재의 작품에 잣대를 견주기도 한다.
살아온 인생에 대한 가늠과 가치는 엇비슷하게 기준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박정수 정수아트센터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