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전화기에 붙어있는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기록하고, 이미지를 수록할 수 있지만 카메라가 발명된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기록은 글씨와 그림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말로 전래되어는 구전(口傳)이 있지만 말은 하는 이에 따라 내용이 가감(加減)되기도 하기에 있는 그대로 전달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캘리그라퍼, 추사 김정희
우리나라에서 글씨 하면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를 떠올리게 된다. 김정희는 중국에서 전래되는 필법을 따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완당(阮堂)과 추사(秋史)라는 호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나,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등 글의 시류와 시기적 상황에 따라 100여개의 호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특히, 1844년 제주도 유배시 그린 세한도가 유명하다.
붓으로 쓰는 글씨를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 하는데 중국의 서법(書法), 일본에서의 서도(書道), 우리나라의 서예(書藝) 모두 캘리그라피로 번역된다. 캘리그라피가 붓으로 쓰는 글씨를 통칭하기 때문에 달리 번역할 말이 없지만 상형문자를 기본으로 한 동양권의 특수성을 이해하자면 캘리그라피가 아니라 서예(書藝)를 'Seoye'라는 고유명사로 사용해 봄직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필이나 여타의 필기도구가 발명되기 전까지 글씨는 활자로 제작되거나 붓을 사용해 사회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이, 붓, 먹, 벼루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하여 글 쓰는 필수요소를 친근하게 이름을 붙였다.
미술에서도 서양화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문인들이 글과 그림을 함께하는 문인화(文人畵), 먹과 벼루, 채색을 활용하는 서화(書畵)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화 혹은 동양화로 불리는 종이에 먹을 주로 쓰는 그림의 재료를 영문으로 쓸 때 인디아잉크(Indian ink) 또는 Oriental Painting이라고 적어 왔다.
기본으로 사용되는 검은색은 먹을 사용하는데 나무나 기름을 태운 그을음을 굳혔다가 갈거나 녹여서 써 왔다. 인디아 잉크나 오리엔탈 페인팅은 국적을 잘 알 수 없으므로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쓰고 있었으니 먹(muk)라고 쓰자고 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는지 요즘은 먹이라고 쓰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자로는 묵(墨)이라고 쓴다.
먹은 옛날에는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에 사슴이나 소뿔을 정제해 만들어진 아교와 섞어 굳힌 것을 주로 했다. 이를 송연먹(松煙墨)이라 한다.
이것과 달리 유동(기름오동나무)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것을 유연먹(油煙墨)이라 한다. 참기름이나 배추씨와 같은 채유(菜油)에서 그을음을 채취하기도 하지만 동유가 최고라고 한다.
요즘은 인디안 잉크나 오리엔탈 페인팅보다는 ‘muk’ 먹 혹은 묵(墨)으로 쓰는 추세가 더 많다. 우리나라의 서예를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의 서도(書道)라 하지만 모두 캘리그라피로 번역된다.
캘리그라피가 붓으로 쓰는 글씨를 통칭하기 때문에 달리 번역할 말이 없지만 한글은 중국의 뜻글자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뜻글자 의미를 지닌 글자들이 많다.
캘리그라피라는 의미 자체가 예쁜 글씨를 말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서예와 분리돼야 한다. 한자의 생성원리가 그림문자이기 때문이기도 조형성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글씨 자체가 추상성을 가지고 있어 그것에 담기는 내용과 조형미가 함께한다.
단순히 예쁜 글씨가 아닌 사상과 생각이 담긴 서예
서예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서예가를 서가(書家) 혹은 서화가로 불리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미술전람회에 서예부분을 공모하면서 독립된 장르로 형성됐다.
서예라는 말은 일본인이 사용하던 서도(書道)와 대별되기 위해 ‘예(藝)’자를 붙임으로 해서 독립된 장르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서체로는 중국 갑골문을 바탕으로 한 전서(篆書),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전서를 간략하게 정리한 예서(隷書),예서와 비슷하지만 4세기 이후 간략하게 쓰기 시작한 해서(楷書), 공문서나 실용적 사실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가독성을 높인 행서(行書), 뜻 글자인 한자를 간략하게 쓴 초서(草書)가 있다.
우리나라 서체로는 고딕체, 굴림체, 궁서체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인쇄용 활자이거나 컴퓨터에 쓰이는 서체가 대다수다. 서체라고 하는 것은 글꼴 혹은 글자체를 의미하지만 서예에서의 서체라고 하는 것은 글 쓰는 이의 사상과 감정, 사회성 등에 의해 보편성을 획득한 상형문자(象形文字)의 의미를 내포한 모양체를 말한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중학교 미술시간에는 궁서체 쓰기 수업이 있었다. 글씨를 예쁘게 만드는 일인데 정사각형 안에 한글을 넣어 붓으로 쓴 듯이 그렸다.
인쇄 활자 비슷하게 그렸는데 궁서체란 한글이 만들어진 이후 궁에서 궁녀들이 주로 쓰던 서체였다. 왕비와 후궁, 계급 있는 궁녀들이 살던 곳을 내명부라 하는데 이곳에서 주로 사용된 서체다. 실록을 작성하는 서사상궁이 주로 사용했는데, 이때 누가 썼는지를 모르게 하기 위해 특정의 서체를 교육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예의 서체는 컴퓨터로 쓰여지기도 하는 폰트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성, 개인의 감정까지 포함하는 시대정신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서예의 서체는 캘리그라피의 예쁜 글씨가 아니라 사상과 사유와 감성에 따른 그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날부터 ‘글씨(書)는 곧 그림(畵)이며, 그림(畵)은 곧 글씨(書)’라는 시화일률(詩畵一律)이라는 전통적 상황에 따라 서예는 미술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글씨로 표현하는 종이 위의 공간예술로서의 가치 ‘인정’
국내 경매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이 77년에 쓴 한문 휘호 ‘국민총화 총화전진(國民總和 總和前進)’이 6,200만원에 낙찰된 일이 있었고, 2007년 3월 경매에서는 한글 휘호가 1억 1,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근래의 글씨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됐다. 2007년 7월 경매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거문고와 사람이 함께 울린다’는 의미의 동인음관(桐人吟館)이라 써진 휘호가 1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있는 안중근 유묵 '황금백만량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가 2016년 경매에서 7억 3,000만원에 낙찰되기도 됐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가 비싼 이유 중의 하나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글씨체의 독창성과 시국의 문제가 글의 내용으로 담겨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보면 된다.
미술가들 중에서 서예가들의 고민은 여기에 많이 있는 듯하다. 서예는 글씨를 쓰는 것부터 예술로 시작된다. 글을 창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에 대한 의미와 새로운 조형성을 구성해내야 한다.
붓으로 써진 글에는 힘이 있다. 여기서 ‘힘’이라고 하는 것은 글 내용이 기상이나 용기를 말한다면 힘찬 붓질일 것이며, 연애편지라면 소담하고 아련함일 것이다. 글자라는 추상적 형태에 글과 글씨를 통해 표현하는 종이 위의 공간 예술이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박정수 정수아트센터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