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바둑은 일본 정석(定石)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정석이란 예로부터 지금까지 공격과 수비에 최선이라고 인정받은 돌의 수순을 뜻한다. ‘수학의 정석’이 있는 것처럼 돌을 놓는 데에도 일정한 공식과 패턴이 있다.
열한 살 때 일본으로 유학 가서 정석으로 똘똘 뭉친 원생들에게 무참히 깨지면서 기본기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군 복무를 위해서 돌아오기 전까지 9년간 일본의 천재들에게 흠씬 깨지면서 실력을 연마하여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는 33승 1무 5패의 기록을 세우며 일본기원이 선정하는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도를 중시하는 일본바둑과 달리 실전과 싸움중심의 한국 바둑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 일본유학경험이 있는 김인 9단이 “일본 바둑은 도와 예를 중요시 여기고, 한국바둑은 그저 싸움판인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 쪽도 잘못된 것은 없다. 그저 다른 것일 뿐 어느 한쪽도 틀린 것은 아니야” 그러면서 척박한 한국에서 바둑이 빠르게 발전하려면 이런 싸움판의 단계를 거치는 게 지름길일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참고 : 도서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조훈현 지음]
이 말은 적중하여 10여년 후부터 한국바둑은 세계정상으로 발돋움하는 한편 일본 바둑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이 형식에만 너무 집착하는 사이에 한국 바둑은 훌륭한 경쟁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껑충 도약한 것이다.
낚시꾼 스윙의 40대 한국의 프로골퍼 최호성 선수이야기
그는 수산고 3학년 때 참치공장에서 실습하다 전기 톱에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4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가정형편 때문에 막노동부터 음식배달까지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숙식을 제공하는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골프장 사장이 직원들도 골프를 알아야 고객들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할 수 있다며 골프를 배우게 하면서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고 프로골퍼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다.
새벽5시 반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오후 3시에 퇴근하면 밤11시까지 골프를 쳤다. 헌 골프채를 구입해서 연습을 하고 버려진 골프잡지를 보면서 독학을 했다 1년만인 1999년 4월 그는 세미 프로 테스트를 통과하여 KPGA 2부에 데뷔했다.
입문 1년 만에 세미 프로가 되었으니 얼마나 혹독하게 연습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2012년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해외로 진출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만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에 비해 근력과 유연성이 점점 떨어지니 비거리도 짧아졌다.
▲프로골퍼 최호성 [사진=아시안투어/뉴스핌]
이미지 확대보기그는 일본 카시오 월드오픈에서 정상에 올라 상금 4천만엔(한화 약 4억 원)을 받아 시즌 상금을 약 7억 원으로 올렸고 상금랭킹 10위에 올랐다. 미국의 골프다이제스트는 골프가 발전하려면 최호성에게 4대 메이저대회 예선을 면제해줘야 한다고 까지 보도했다.
인맥관리의 기본
많은 인맥관리 책들이 나와있고, 인터넷으로도 인맥관리의 비법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본 칼럼도 그 중의 하나이다. 살아온 환경, 성격, 생각, 말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된 인맥관리의 정석은 없다고 생각하며, 책대로 노력해도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15년간 필자가 많은 CEO들을 만나서 인맥관리 컨설팅, 솔루션을 공급하면서 느낀 결론은 그들이 원했던 것은 ‘행복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흔히 인맥관리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영업, 문제의 해결은 그 후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물이었다.
먼저 마음이 열리는 게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이해하는 프로파일링, 한번 맺은 좋은 인연을 유지하는 릴레이션십과 서로의 발전을 지원해주는 열린 소개가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인맥관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윤형돈 인맥관리 컨설턴트(기부링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