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총리가 지난달 말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마무리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같이 토로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2016년 데이비드 캐머런 전(前) 총리가 브렉시트 가결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제76대 영국 총리로 취임한 지 2년 10개월 만이다.
마가렛 대처 이후 영국의 두 번째 여성 총리로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브렉시트 혼선에 책임을 지고 무대 뒤로 물러나게 됐다.
영국 남부 이스본에서 성공회 목사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뒤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민간기업에서 금융 컨설턴트로 12년간 일하는 동안 런던 한 기초의원을 지냈고, 1997년 런던 서부의 버크셔의 한 선거구에서 당선돼 중앙정계에 입문했다.
2002년에는 보수당의 첫 여성 의장에 지명됐고, 2010년 캐머런 내각에서 내무부 장관에 임명돼 6년간 재임했다.
지난 2016년 6월 예상치 못한 국민투표 결과로 캐머런 전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그 후임으로 취임했다. 정작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는 EU 잔류를 지지했으나 취임 후 국민 뜻을 존중하겠다며 3년간 EU와의 협상을 진두지휘해왔다.
지난해 11월 천신만고 끝에 EU와 합의에 도달했으나 메이 총리 합의안은 영국 국내 정치권 반발에 직면했다.
“브렉시트가 실패하면 후폭풍이 크다”는 그의 읍소에도 합의안은 하원 승인투표에서 세 차례나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당초 3월 29일(이하 현지시간)로 예정됐던 영국 탈퇴일은 EU와의 협상을 통해 10월 31일로 연기됐다.
정국 혼란이 지속되자 보수당 내부에서 메이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결국 지난달 24일 당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하드 브렉시트냐, 소프트냐’를 두고 여러 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국 속에 국민도 정치인도 모두 지친 상황. 그 와중에 몇 차례의 퇴진 위기를 겪으면서도 가능한 한 강경·온건파를 모두 만족시킬 브렉시트를 이끌어내려 분투해온 그였다. 이제는 “1900년 이후 재임한 영국 총리 중 6번째 단명 총리”라는 비아냥, “리더십 부재로 3년 가까이를 허송세월했다”는 지탄을 면치 못하게 됐다.
하지만 난장판 브렉시트 정국 속에서는 누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국민 욕받이가 될 수 밖에 없었을 터. 메이 총리는 이를 알면서도‘독이 든 성배’같은 총리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원래 EU 잔류파였다가 브렉시트 구원투수를 맡게 됐지만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라며 국민이 원하는 브렉시트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메이 총리가 제시한 브렉시트 안이 그나마 영국을 덜 망가뜨리는 내용”이라며 그를 옹호하는 국민도 적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 후보군 중 EU와 합의 없이 갈라서는 ‘노딜’ 브렉시트를 마다하지 않는 강경파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바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탈퇴파를 이끌던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다.
거침없는 언행과 보수적 성향 때문에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그는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며 최종 결선까지 진출했다.
존슨 전 장관은 오는 10월 31일 무슨 일이 있어도 EU를 탈퇴해야 한다며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그가 총리가 되면 EU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아 경제적 충격이 클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EU는 누가 영국 차기 총리가 되든 브렉시트 재협상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양측이 제 입장만 고수한다면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딜 공포가 고조되면서 최근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다. 메이 총리가 물러난 후 브렉시트 정국이 얼마나 나아질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장안나 기자 godbless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