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은 독일에서 시작됐다. 1999년 폭스바겐은 노조에 공장을 새로 지어 월급 5000마르크에 실업자 5000명을 채용하는 계획을 제안한다. 5000마르크는 기존 임금보다 20% 낮았다. 회사 측이 이를테면 노동자의 임금 양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제안한 셈인데, 노사의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합의가 이뤄졌고 2001년 8월, 폭스바겐의 자회사 형태로 공장이 설립되었다. 독립법인으로 문을 연 공장은 1만2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별도의 자회사로 운영되다가 2009년 폭스바겐에 편입됐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처음부터 현대자동차의 참여를 전제로 시작됐던 것은 아니다. 광주시는 당초 인도나 중국의 자동차회사들에 참여를 제안했었다. 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현대자동차가 참여를 검토하면서 사업이 급진전됐다. 그러나 협상은 마지막 단계에서 의견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협상과정에서 노조와 시민단체의 반발로 당초의 안이었던 ‘초임 연봉 3500만원, 근로시간 주 44시간’ 조건은 사라졌다. 광주시 협상단은 ‘주 40시간 근무 시 3500만원에 특근비 지급’ 등을 수정 요구했다. 또 협상 조건에 포함됐던 ‘5년간 임금·단체협약 유예 조항’도 삭제됐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경제적으로만 보면 억지로 사업에 착수한다 해도 성공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실적으로 광주에서 생산할 차종 자체가 없다, 당초 검토했던 방안은 신설 공장에서 경형 SUV를 연 10만 대 생산한다는 것이었는데 무리가 많다. 기아자동차는 지금 경차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별도의 회사에서 대리생산을 통해 소형차 모닝을 20만대 생산하는데, 이 자동차를 포함해서 우리나라에서 경차는 생산능력 40만대에 국내 판매는 13만대정도다. 광주에서 또 10만대를 만들어 낸다면 새 수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중국과의 경쟁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기아자동차는 광주에 생산 공장을 이미 두고 있다. 62만대 규모로 생산능력을 늘렸지만 판매부진으로 지난해 47만대 수준 생산에 그쳐 생산능력의 75% 수준에 머물렀다. 올해는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생산라인이든 늘려야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은 정부라고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임금이 당초 계획보다 높아졌고 그것도 해마다 임금 협상까지 하게 된다면 당연히 기업의 수익성은 떨어질 것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면 지속 가능성은 낮아진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정부의 공약사항이자 100대 국정과제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상황에서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시범 사업이다. 지역을 옮길 수도 없다. 광주가 안 된다고 해서 비슷한 사업을 다른 지역에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주에서 안 되면 다른 곳도 안 된다. 광주에서 먼저 해내야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도 가능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로든 반드시 실현시켜야 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정부는 참여를 고민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다른 부문에서 성의를 표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던 삼성동 사옥 건립사업도 마침내 승인이 됐고, 정부의 대대적인 수소경제 활성화 계획도 발표됐다. 그동안 현대자동차의 걱정거리였던 도심 내 수소충전소 설치 문제도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규제 샌드박스 1호로 해결의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공장 설립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996년 우리나라에 마지막 자동차 공장을 지은 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 19개 공장을 지어 5만7000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면서도, 우리나라에는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았다. 지금 현대차그룹은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330만대를 만들지만 해외에서는 570만대를 만든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前 인하대 겸임교수/前 금융감독원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