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포화와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장기화, 그리고 오는 2022년 도입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등 복합적 영향으로 인해 국내 보험업계는 유래없는 ‘성장 정체’에 빠져있다. 생명·손해보험협회 등 보험 유관기관장들은 물론 각 보험사 CEO들 모두가 신년사를 통해 ‘진정한 위기가 시작됐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각 유관기관장과 CEO들은 보험업계의 오랜 불황을 깨고, 향후 10년을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로 인슈어테크(보험과 기술의 합성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신용길닫기신용길기사 모아보기 협회장은 신년사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에 따른 데이터 분야와 핀테크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규제혁신 노력도 속도감 있게 전개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손해보험협회 김용덕닫기김용덕기사 모아보기 협회장 역시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 보험업계 새해 첫 행보 ‘디지털 플랫폼 개편’, 인슈어테크 혁신 주마가편
2019년 새해가 밝기가 무섭게 보험사들은 인슈어테크를 앞다투어 도입하며 소비자 편의와 영업력 강화를 위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신창재닫기신창재기사 모아보기 교보생명 회장은 신년사에서 “고객 중심으로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할 계획”이라면서 “가입-유지-지급에 이르는 보험의 전 과정에 디지털 신기술을 적용해 업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조에 맞춰 교보생명은 보험업계 최초로 인슈어테크를 적용한 신개념 질환예측 서비스 ‘평생튼튼라이프’를 공개했다.
‘평생튼튼라이프’는 건강검진 정보를 토대로 당뇨, 심혈관질환의 3년 내 발병률을 알려주고 해당 질병을 보장하는 보험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의 질환예측 알고리즘으로 질환 발병률을 예측해 고객의 장기적인 건강관리를 돕고, 보장분석시스템과 연동해 본인의 건강상태에 맞는 보험상품을 안내해 주는 것.
‘평생튼튼라이프’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진행하는 인슈어테크 국책 과제의 일환으로, 교보생명이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 헬스케어(라이프시맨틱스), 블록체인(아이콘루프) 등 인슈어테크 전문기업과 함께 개발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교보생명 모바일창구(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사전검진을 통해 습득한 건강검진 정보(신장·체중·허리둘레·혈압·혈당·콜레스테롤·흡연여부 등 12개)를 업로드하거나 직접 입력하면 된다.
현재 교보생명은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평생튼튼라이프’를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향후 안정화 단계를 거쳐 이르면 올 하반기에 교보생명 전체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혁신’을 그룹 전체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설정한 KB금융지주의 KB손해보험과 KB생명보험도 디지털 플랫폼 정비에 나섰다.
KB손해보험은 연초 보험금 청구를 비롯한 다양한 보험 관련 서비스를 하나의 앱으로 통합해 제공하는 고객 맞춤형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KB손보 통합 모바일 앱은 패턴, 간편비밀번호, 지문, 카카오페이, 휴대폰인증, 공인인증 등 6가지 로그인 수단을 업체 최초로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건강관리 기능을 수행하는 ‘라이프 케어’ 서비스도 도입했다.
KB생명보험 또한 디지털플랫폼을 리뉴얼 오픈 하였다. 리뉴얼한 플랫폼은 다양한 고객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계약고객 서비스’ 중심에서 ‘디지털 마케팅 채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B생명보험은 이번 디지털플랫폼 리뉴얼을 시작으로, 다양한 핀테크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과 컨설턴트에게 수준 높은 디지털환경 경험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도 미래에셋생명 역시 새해 들어 고객 맞춤형 사이버창구 개편에 나섰으며, 동양생명도 원터치 보장분석 시스템 도입으로 소비자 편의 증대 행보로 주목을 끌었다. 현대해상 등 다른 주요 보험사들도 가까운 시일 안에 소비자를 위한 디지털 서비스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보험사들은 물론 보험개발원 등의 유관기관들도 인슈어테크 혁신에 한창이다. 대표적으로 보험개발원은 ‘인공지능(AI) 기반 자동차견적시스템 New Start AOSα(AI기반 수리비 전산견적 온라인 시스템)’ 명명식을 가지고 AOSα(AOS 알파) 개발을 본격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AOSα는 사고로 파손된 차량의 사진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손상된 부위의 판독부터 수리비 견적 산출까지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서 자동차보험을 영위하는 모든 회사에서 사용하게 될 예정이며, 이르면 하반기부터 상용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디지털 보험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경영환경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존 보험사 경영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혁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데, 디지털 보험이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 “보험 플랫폼 본격화 위해서는 규제 완화돼야”
앞서 보험연구원은 보험회사들이 기존 대면 채널 위주의 영업행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판매채널 활용을 통한 사업모형을 구축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보험연구원 안철경 연구위원은 “현재 보험사가 소비자를 찾아가 판매하는 ‘아웃바운드’ 위주의 영업에서 벗어나 인바운드 영업 패턴을 활용하고 인터넷이나 모바일 외에도 다양한 플랫폼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행 규제에서는 이러한 보험 플랫폼이나, 소액담보를 취급하는 보험사들도 일반적인 대형 보험사들과 동일한 진입규제를 받아왔기에 특화 보험사 출현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었다.
현행 규제에 따르면 특정 소액담보를 취급하는 보험사도 모든 담보를 판매하는 대형보험사와 동일하게 최소자본금 300억 원이라는 진입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올해 이 최소자본금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전문보험사 설립을 유도하는 동시에, 새로운 보험 플랫폼 출현의 규제를 확 낮추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보맵, 인바이유, 디레몬 등을 비롯한 보험 플랫폼들의 경쟁에 더욱 불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