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는 국채는 세수가 모자랄 때 발행한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혀서 여유 자금이 있다면 빚부터 갚는 게 맞다. 하지만 초과세수가 발생한다고 해도 반드시 모두 국채 상환에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빚을 모두 갚아야 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재정 전망도 해야 하고 경제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당연히 여론의 반응도 살펴야한다. 정치적 부담도 고려해야 하는 요소다. 이런 여러 가지를 다 감안해서 결정하려면 기나긴 협의가 필요하다.
물론 정부의 모든 정책이 치밀하고 복잡한 검토와 논의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사무관이 초안을 잡아 과장의 검토를 받고나면 그 다음은 약간의 보완이 있을 뿐, 골격은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련부처가 많고 의견이 크게 다르거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어서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사안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정책 조율 과정에 청와대 참모진이 참여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중요한 정책이라면 대개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청와대 담당 비서진과 협의과정을 거친다. 원칙적으로는 경제부처의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을 하라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국채발행은 국회에서 허용한 한도 안에서 상황을 고려해 정부가 결정한다. 당시에는 국채 추가 발행을 통해 재정여력을 확보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다른 한편에선 세수가 예상보다 많은 상황에서 일정 부분은 국채발행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기획재정부 안에서도 정책국은 국채 추가발행을, 국고국은 국채발행 축소를 주장했었다고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그러니까 당시 신재민 전 사무관이 속해 있었던 국고국은 빚부터 갚자는 주장을 했던 것이고 정책국과 청와대 경제비서관, 그리고 경제부총리는 쌓아둘 수 있을 때 미리 좀 쌓아두자는 쪽으로 생각을 했던 셈이었는데, 결론은 적자 국채 추가 발행 취소였다.
협의라고 했지만 청와대 참모진과의 협의가 단순한 협의가 아니라 압력이 되는 때도 있기는 하다. 그것은 청와대와 행정부, 구체적으로 대통령, 또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의 관계에 따라 다르고 협의하는 상대에 따라 다르다. 단순히 청와대의 담당 비서관이라고 해서 압력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경제비서관을 지내고 나면 대개 경제 부처에 차관으로 승진해 오는 경우가 많다. 협의를 할 때 감안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 그러니까 경제 문제에 흔히 말하는 이른바 정무적 고려가 필요하다고는 해도,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참고로 논란이 된 2017년, 정부가 상환한 국고채 규모는 모두 71조 원 이었다. 그 전 해인 2016년에는 69조 원을 상환했었는데 2조 원 정도를 더 많이 갚았다.
좀 다른 얘기지만 정부가 국고채 상환을 자주, 또 많이 하는 것은 사실 칭찬할 일이 못된다. 잘못 판단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10년짜리 채권을 발행한 뒤 5년 만에 갚는다면 쓸데없는 이자부담만 졌다는 얘기가 된다. 통상 채권의 만기가 길수록 이자가 높기 때문이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前 인하대 겸임교수/前 금융감독원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