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생명은 서기봉 사장의 뒤를 이어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을 맡고 있던 홍재은 상무를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했다.
홍재은 신임 사장은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이후 은행, 지주 등을 오가며 자산, 신탁 등의 업무를 맡아온 지주 내 최고의 자산운용 전문가 중 하나로 통한다.
당초 농협생명은 이번 CEO 인사를 앞두고 외부인재 영입까지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로 위기 탈출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IFRS17 도입에 대비한 체질개선 과정에서 실적이 뒷걸음질 친데다, 자산운용수익률 면에서도 생명보험업계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협금융지주는 다른 지주와는 달리 농협중앙회와 전국 농·축협 단위조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특수성이 있어 외부 인사가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 1년이라는 짧은 임기를 고려하면 외부 인사가 영입되더라도 ‘업무파악만 하다 임기가 끝나는’ 흐지부지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따라서 농협금융지주는 보험업 경력이 없더라도, 지주 전체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내부 인사를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했다.
농협금융 한 고위 관계자는 “농협생명에 모험보다는 안정이 필요한 시기라는 의견이 많아 외부인사 영입은 일찍이 철회한 상태였다”고 부연했다.
NH농협생명은 31일 홍재은 신임 사장의 취임식을 가졌다. 홍 사장은 이 자리에서 지속가능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끊임없는 혁신을 강조했다.
홍 사장은 “2019년을 농협생명의 ‘가치경영 원년의 해’로 정하고 ‘혁신·인재·미래·책임’을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한 실천 과제로 ▲경영체질 혁신 ▲인력전문성 제고와 성과주의 문화 도입 ▲환경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처 ▲농업인 및 고객에 대한 신뢰와 지역농축협과의 동반자적 관계 공고화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홍 사장은 김구 선생이 해방된 조국민들을 위해 강조했던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을 소개하며 “농협생명도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혁신을 위한 과정에 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보험업 경험 전무한 홍재은 사장, 자산운용 강화에 방점
홍재은 사장은 자산운용에서는 확실한 강점을 지니고 있지만, 보험업 경력은 전무하다는 약점이 있다. 그의 경력은 기업고객부 단장, 농협은행 PE단장, 자금부장,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 등, 보험업과는 연관이 없거나 적었다.
그러나 이는 지난 2년간 농협생명의 수장으로서 회사를 이끌어온 서기봉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서 사장 역시 1986년에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이후 중앙회와 은행 등을 주로 거치다가 2017년 농협생명의 사장으로 깜짝 발탁됐던 바 있다.
서 사장은 보험업 경력이 없어 업계 안착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농협생명의 체질개선 및 디지털화를 이끌며 미래 먹거리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당시 농협생명은 인슈어테크로 대표되는 보험업과 디지털의 결합에 주목하고 있었다. 서 사장은 NH농협은행 부행장 시절에도 모바일플랫폼사업을 총괄했던 IT사업 경력자였다.
NH농협생명이 온라인채널 강화 및 체질 개선을 놓고 서 사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홍재은 사장 발탁 역시 현재 생명보험업계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농협생명의 자산운용수익률은 금리 상승기에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며 생명보험업계 평균을 밑도는 등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NH농협생명은 지난 9월 기준 전년동기 대비 0.24%p 하락한 2.95%의 자산운용 수익률을 거뒀다. 국내 24개 생명보험사의 평균 운용자산이익률이 3.42%인 것에 비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국공채와 회사채 비중이 높아 보수적인 운용을 펼친 것이 원인이라는 평이 나온다.
보험사들은 가입자에게 보험금과 이자를 내주고 각종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굴려 연 4% 가량의 수익을 내야한다.
그러나 올해는 미국발 금리인상이 예상보다 국내 시장에 호재로 작용하지 못한데다, 생보업권 전체가 시장포화 및 체질개선 과정에서 성장 정체에 접어듦에 따라 생보업계 전체에 암운이 드리운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협금융지주는 비록 보험업 경력은 없지만, 자산운용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스페셜리스트’인 홍재은 내정자에게 기대를 건 것으로 풀이된다. 서기봉 사장이 영업의 기반을 닦았다면, 홍 내정자에게는 금리 상승기에 효과적인 자산운용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여기에 보험업계가 오는 2022년 도입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대비해 자본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 역시 금융통으로 통하는 홍 내정자의 발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앙회와 지주 등을 폭넓게 오간 경력이 있는 홍 내정자에게 있어 자본확충 과정에서 지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누구보다 원활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신임 사장님께서 보험업 경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업 경력 자체는 지주 내 누구보다 뛰어나신 분인 걸로 알고 있다”며, “올해 농협생명은 영업 측면보다는 자산운용 측면에서 고전을 했는데, 이러한 부분을 새로운 사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농협금융지주 측 역시 “홍재은 내정자는 금융시장부문에 대한 전문경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자산건전성 확보와 체질개선 등 농협생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인물로 지목된다”는 평가를 내놨다.
◇ 영업 채널 다변화부터 재무건전성 확보까지 ‘숙제’ 수두룩
2019년을 맞이하는 생명보험업계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합계출산율은 1명 이하로 떨어진 데다, 급격한 고령화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14%를 넘어서는 등 인구절벽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보험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지난해 즉시연금, 암보험 등 약관을 둘러싼 소비자 및 금융당국과의 갈등도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2022년 도입될 IFRS17 및 K-ICS 등도 1년의 유예가 주어졌을 뿐 도입 자체가 무산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IFRS17이 보험업계의 체질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대격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보험연구원은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내년 생명보험의 성장률이 3.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관측한 바 있다.
서기봉 사장 이전 농협생명은 매출 구조에서 저축성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서 사장은 보장성보험과 저축성보험의 비중을 5대5로 맞추는 전략을 내세웠고, 그 결과 지난 2017년 농협생명은 이미 보장성보험 위주의 체질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던 바 있다.
그러나 농협생명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방카슈랑스 채널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서기봉 사장의 5대5 전략에는 농촌과 도시의 매출 비율을 5대5로 맞추는 전략도 포함돼있었으나, 농협생명의 핵심 고객층에 해당하는 농촌의 비중을 단기간에 줄이는 것은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농협생명이 지난해 8월까지 판매한 초회보험료 9044억 원 가운데 96.6%에 해당하는 보험료가 단위조합을 포함한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거둬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서 사장 체제 하에서 지난 2017년 12월 론칭했던 온라인채널도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 기존 대형사들의 득세 아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농협생명의 실적 자체도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NH농협생명의 지난해 3분기까지 268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기록했던 951억 원보다 무려 71.8%나 감소한 수치다.
재무건전성도 영향을 받아 지급여력(RBC) 비율에서도 206.7%로 작년 말보다 11.2%포인트 감소했다. 아직까지는 200%를 상회하고 있어 ‘위험 수준’은 아니라는 평이 많지만, 상반기부터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업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포토폴리오가 보장성상품 위주로 재편되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현상”이라며, “다른 보험사들도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농협생명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며, 오히려 IFRS17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플러스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상품이 많은 생명보험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개선된 실적을 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임기가 짧고 특수성이 짙은 농협 계열사 CEO로서는 더욱 임기 안에 성과를 보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보험업계는 농협생명이 홍 사장 임기 안에 뚜렷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산운용수익률 개선을 토대로 장기적인 실적 개선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당면과제로 삼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홍 사장이 내건 “‘지속 가능한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가치 경영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홍재은 사장은) 재무통으로 통하는 만큼 숫자에 밝은 분이라, 취임이 결정된 후부터 각 부서로부터 상세한 보고를 받아 꼼꼼하게 검토하고 계신다”며, “전임 사장님이 체질개선 작업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므로, 올해는 자산운용수익률을 올려 전체적인 실적을 안정궤도에 올리는 것이 목표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