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한국의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사교육을 경험하며 자라난다. 어린이다운 추억을 쌓을 기회는 사라졌다.
행복이니, 인성이니 하는 얘기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의 속 편한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우리 자녀들은 더 심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지레 겁먹고 질려서 나가떨어지면 그때부터는 의욕상실이 오고 여기에 더하면 자포자기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부모들은 걱정되고 두렵다. 어쩌면 적나라한 그 속내는 내 자녀가 앞으로 뭘 해서 밥 벌어먹고 살아갈 것인가이다.
모두가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기교육, 선행교육이 만연한 한국과 상황이 비슷한 나라도 있지만, 유럽 서쪽 끝나라 네덜란드는 전혀 다르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다른 집 자녀 대학 타이틀에 관심이 없다.
내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정말로 없다! 간판뿐인 대학이름이 큰 소용없어서가 아니다. 네덜란드 대학은 전국에 열 개 정도밖에 없고 소수의 엘리트들이 학문을 위해 입학하는 곳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대학은 전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전공을 막론하고 일단 네덜란드에서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잘 하면 미래는 밝다.
이런 네덜란드 교육 환경 속에는 아주 독특한 문화가 하나 있다. 바로 ‘평균 이상만 되면 통과’되는 학점 시스템이다.
우리로 치면 중·고등학교를 의미하는 중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과목당 평균만 넘으면 문제없다. 가령, 수학 과목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나 평균 점수만 받은 학생이나 똑같이 인정을 받는다.
그러니 1점이라도 더 받아서 등수를 올리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수학에 크나큰 부담을 떠안은 채 학원에 다니거나 수학 과외를 하지 않는다.
그럼 누가 수학을 공부할까? 바로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만 수학에 매진한다. 수학이 너무 싫고 어려운 학생들은 그냥 평균 이상만 되도록 노력하면 될 뿐이다.
뭔가 당연한 것 같은데 우리로서는 상당히 생소한 시스템이다. 그럼 네덜란드 학생들은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해서 잘 하면 되는 걸까.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네덜란드에서는 학생들이 모든 과목에서 최고점수를 받아야만 ‘좋은’ 학생 혹은 우등생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자신이 잘 하는 것 한두 과목을 잘 챙겨야 한다. 어떤 학생이 수학보다는 과학에 관심이 크다면 수학은 평균 점수만 받아도 무방하지만 과학 과목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장려한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에 더 집중해 심도 있게 공부한다. 물론 즐거움도 따라오고 공부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
아이가 잘하는 과목을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교육 필요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과 다른 네덜란드의 교육철학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지양한다. 제국주의 시절에서나 볼법한 틀에 찍어내는 대량 인재 양상을 원하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이 지닌 개성을 가치 있게 여기며 학생마다 드러내는 각기 다른 재능을 높이 여긴다. 학생들이 모든 과목에서 완벽한 점수를 받도록 노력하고 그 총점에 따라 성적의 순위를 매겨 줄 세우는 방식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은 모든 학생이 적절한 교육을 충분히 받는 일이다. 성적이 낮다고 낙오되지 않고, 잘 하는 영역은 더 발전시키며, 그런 가운데 즐겁고 행복하게 배우고 자신의 장래를 준비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바로 이런 교육철학이 교육 시스템에 잘 반영돼 있다.
그들은 또, 합리적인 차원에서도 줄 세우기 방식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학생마다 잘 하는 과목이 있고, 실력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 없는 과목의 점수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게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집단의 상향평준화를 위해서 개인의 적성을 등한시 여기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며 비관적 태도를 보인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좋아하는 과목에 더 집중해서 공부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개인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훨씬 더 큰 이익이라고 실리적 판단을 내렸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의 성적과 미래를 고민할 때 꼭 한 번 깊게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 있다. 모든 과목을 두루두루 웬만큼 잘 하는 자녀로 키울 것인가, 딱 하나 유난히 특출한 능력을 소유한 전문가로 키울 것인가이다. 스펙을 잘 쌓아야 입시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다 섭렵하고 화려한 수상 경력까지 만들어주고 싶은 부모 마음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학에 입학 했을 때, 내 자녀에게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인가 장담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 성적 전체 평균을 높일 것인가, 아니면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재능을 집중 지원할 것인가 정해야 한다. 둘 중 하나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전체 평균이 높으면 또 그런 방향에 맞게 가는 길이 열리고, 특출난 점 하나를 강화하면 그 나름에 맞는 방향이 생긴다.
네덜란드는 직업의 귀천이라는 개념이 미미한 나라다. 개인이 생업으로 무엇을 하는가 보다 그 개인의 삶 자체가 더 소중하다고 여긴다. 평균보다 높은 소득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서 그것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여가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지가 관심사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맞춰 교육 시스템과 경제 구조가 최적화 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은 정권 바뀔 때마다, 장관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손바닥 뒤집어지듯 달라진다. 낭패를 보는 것은 내 자녀다.
입시제도가 바뀌고 평가 기준이 달라진다고 해서 몇 십 년 묵혀 온 부작용이 싹 사라질 리 없다. 마치 뭐 하나만 바꾸면 교육 시스템에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교육 정책을 손보고 부분을 뜯어고쳐서 전체를 바꾸려 하는 시도는 학생과 부모에게 고스란히 부담만 가중시킬 뿐 소용이 없다.
교육철학은 한번 정해진 뒤에 변하면 안 된다. 여러 병폐를 낳은 지금의 교육철학이 바뀌고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도 바뀌어야 지금 우리 앞에 산적한 교육의 부작용과 문제점이 서서히 개선될 수 있다. 그 첫걸음으로, 평균에 대한 의미를 재고해보는 진지한 고민을 우리 부모들이 먼저 해보면 어떨까.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황유선 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