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여성들은 임신을 하면 ‘당연히’ 휴직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당연히’ 복직한다. 회사 분위기가 그렇다. 국가가 그러한 법률체계를 이미 만들어 놓았고, 고용주와 직원 그 어느 쪽도 이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임신한 여성이 ‘당연히’ 휴직하고 복직할 수 있는 사회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행복 추구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돈을 벌어 자립적인 존재로 지낼 수 있다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사실 이외에도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 많은 혜택을 여성에게 선사한다.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실천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세계를 갖기에 자신감을 쉽게 잃지도 않는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한 뒤 사랑하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여성에게 한없이 소중하기만 한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여성이 임신과 출산 후에 자연스럽게 일터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은 행복에 더 가까운 삶을 만들어 줄 가능성이 높다. 단, 자발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에 한해서 말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네덜란드 여성들은 큰 혜택을 누리고 산다. 그들은 임신을 하면 ‘당연히’ 휴직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당연히’ 복직한다. 회사 분위기가 그렇다. 국가가 그러한 법률체계를 이미 만들어 놓았고, 고용주와 직원 그 어느 쪽도 이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론, 어린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도 충분하다. 비용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이며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금액이 책정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철저하게 보장해주고 있다. 오죽하면 <네덜란드 여성은 우울하지 않다(Dutch women don’t get depressed)>라는 책이 발간되었을 정도다. 이 책의 내용은 네덜란드 여성이 누리는 ‘일과 삶의 조화로움’, 그리고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통해 네덜란드 여성들의 행복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경단녀’라는 단어가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생소하다. 우리는 지금에서야 인식하기 시작한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라는 개념이 네덜란드에서는 일찌감치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말이 나온 김에 근무 환경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겠다. 네덜란드 여성의 고용비율은 60퍼센트를 넘는다. 남성의 고용비율이 70퍼센트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눈여겨볼 중요한 현상이 있다. 고용상태인 여성 중 76퍼센트 정도는 일주일에 36시간 미만을 일하는 파트타임직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그런 자리가 아니고 엄연한 정규직 지위의 파트타임이다.
네덜란드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근로자들도 정규직으로 일할 권리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 1996년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덕분이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더라도 복지, 휴가, 승진 등에 있어서 전혀 차별이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 하자면, 근무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 또한 마련돼 있다.
여성은 물론 남성 근로자들도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자신의 업무 스케줄을 맞출 수 있고, 일찍 출근한 대신 일찍 퇴근해 저녁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 진정한 일과 삶의 균형이 있는 생활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
네덜란드 여성의 삶은 우리에겐 너무 먼 세상의 소설 같다. 상대적 박탈감도 느껴진다. 비교되는 삶을 향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끼며 지금 한국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과 엄마들은 더 암울해 질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이 녹록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행복해야 한다. 내 자녀를 행복한 자녀로 만들고자 한다면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한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가 행복해질 가능성은 낮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리와는 다른 삶 속에 있긴 하지만 네덜란드 엄마들로부터 행복의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자녀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태도다. 단적으로, 자녀의 성적이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라면 이점을 굳게 마음에 새기는 것이 좋겠다.
자녀가 만들어내는 성과가 좋다면 엄마로서 당연히 기뻐할 일이지만, 그것이 마치 나의 삶을 대신하듯 자녀에게 의존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행복은 점점 멀어진다. 엄마라는 이유로 온전한 나를 잃어버리고 자녀가 내 삶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도록 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특히 자녀와 나를 동일시하다 못해 자녀가 나의 삶을 살아주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부터 나의 삶은 내가 어찌 해볼 도리 없는 삶이 된다. 내 삶은 사라진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자녀에게 나의 꿈을 투영시키는 단계까지 간다.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내 자녀가 이 정도 성과는 내주겠지’ 라는 기대를 한 뒤, 자녀가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내가 미처 못 이룬 꿈까지도 슬쩍 얹어서 그 꿈을 모두 이뤄주는 통쾌한 미래를 희망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녀가 공부를 잘 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그 어느 모임에 가서도 얼굴이 선다. 마치 내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듯 우쭐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한국 여자의, 한국 엄마의 행복일까. 한국의 사회적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것 아니냐는 원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왜 나의 삶과 행복을 자녀에게 부담시키고 내가 그 안에서 만족을 얻어야 하며 과연 그게 맞는지도 생각해 볼 시점이다.
자녀와의 대화 주제가 온통 성적과 취업에 관한 것이라면, 그래서 집안 분위기가 삭막해진다면 그것은 과연 자녀를 위해 겪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일까. 왜 삶이 우울해질까? 삶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나는 왜 사는가? 이런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도 더 늦기 전에 한번쯤 곰곰이 찾아보자.
네덜란드 여성들은 임신을 하면 ‘당연히’ 휴직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당연히’ 복직한다. 회사 분위기가 그렇다. 국가가 그러한 법률체계를 이미 만들어 놓았고, 고용주와 직원 그 어느 쪽도 이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짧게라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챙기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평안해야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우리 조상의 지혜로운 조언이다. 동시에, 집안의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고 궁극적으로 집안이 잘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엄마의 행복은 행복 육아를 실천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행복한 엄마라는 것은 거창한 명제가 아니다.
남의 시선이나 세상의 뻔한 잣대로부터 벗어나 자존감을 갖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된다. 내 삶을 소중히 여기며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이 행복한 엄마가 되는 첫 번째 순서다. 자녀의 성과와 무관하게 당당한 자기애를 키우는 것이다. 자녀보다 내 삶의 중심을 먼저 세운 뒤에 자녀를 바라봐야 한다.
네덜란드 엄마들은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집안일을 멈추고 단 이삼십 분이라도 조용히 차 한 잔 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진다. 대부분 네덜란드 가정에는 정기적인 ‘빠빠다흐(papadag)’가 있다.
아이들과 집안일을 남편이 챙기고 아내가 완전한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번 혹은 이주일에 한번, 각자의 집안 사정에 따라 빈도는 다르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런 삶의 태도는 혼자만의 시간이 보상해주는 행복을 모두 잘 알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짧더라도 하루에 한번 다른 일은 좀 미루고 나만의 시간을 챙겨볼 필요도 있다. 나만의 시간이 엄마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더 따뜻해지며, 엄마의 미소가 더 활짝 핀다면 그 시간은 결국 내 아이들을 위한 소중한 시간으로 돌아간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엄마의 모습은 고귀하지만 엄마가 행복하기까지 하다면 자녀 행복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