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stewardship code)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국내 주식시장의 대표적인 ‘큰손’인 국민연금의 주주로써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자산운용사들은 움직임이 더디다.
19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관련해 주무 부처인 복지부와 논의를 거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지침 제·개정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실무 부서에서 ‘국민연금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전면적으로 검토한 후 국민연금의 실정에 맞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오는 7월경 기금운용위원회에 개정안을 상정하고 심의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복지부와의 협의 및 연구용역 등 외부 기관의 자문 등을 거쳐 개정안 상정, 심의 및 의결 절차를 거치면 최종적으로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로 인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라는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졌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으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협약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제정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직접 강조하고 나서는 등 정부의 활성화 의지도 확보된 상황이다.
다만 자산운용사 업계는 섣불리 참여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금융투자업계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19일 기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자산운용사는 KB자산운용, 동양자산운용, 메리츠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흥국자산운용 등 10개사에 그친다. 이는 금융투자협회에 가입된 회원사 196곳 중 5%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외 DGB자산운용, IBK자산운용, KTB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대신자산운용, 동부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아크임팩트자산운용,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등 11개사도 참여 예정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이마저 구체적인 시기는 제시되지 않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논의는 되고 있으나 아직은 계획이 없는 상태로 알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들 자산운용사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담당 조직을 설치하고 인력을 보강해야 하는 데 이는 중소형사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의결권과 관련해 외부 기관에서 자문을 받는 데 드는 수수료까지 감안하면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에게는 더욱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한 중소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대형사에 비해 비용이나 인력, 시스템 등 모든 측면에서 열외에 있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만큼 추세적으로 따를 계획이긴 하나 조금 더 체계를 갖춰야할 필요가 있어 당장은 어렵다”고 말했다.
섣불리 도입하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비용 부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중소형사들에게는 결국 시간의 문제가 된 셈이다. 반면 이미 체계를 갖추고 도입에 나선 자산운용사들은 여유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수탁자 책임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겠다며 자산운용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바 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관계자는 “이미 도입 전부터 비용과 인력을 충분히 보강한 후 원칙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며 크게 부담이 되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KB자산운용은 올해 컴투스와 골프존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는 등 수탁자 책임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있어 규모가 작은 중소형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실질적인 비용 부담”이라며 “의결권 자문부터 내부 인건비 및 관리비 등 요구되는 지출이 크다”고 말했다.
송 연구원은 “의결권 자문은 자체적으로 인력을 고용해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한국지배구조원 등 외부 기관의 자문을 이용하는 방법 중 비용적으로 유리한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며 각 회사의 실정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범위와 대상도 규모와 역량에 부합한 방향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송 연구원은 “주식과 채권 등 어느 범위의 자산권까지 적용할 것인지, 의결권만 행사할 것인지 적극적인 주주 관여를 활동에 나설 것인지, 스튜어드십 코드 7가지 원칙 중 부분 도입을 진행할 것인지 등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제시하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 현실적으로 원칙을 일제 도입하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수준에서 단계적 시행방침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 이슈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관심도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결국 의결권 행사를 통해 투자자의 신뢰를 얻게 되면 새로운 고객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이러한 유입으로 인한 보상도 따를 수 있어 운용사의 중장기적인 철학에 달린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