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하나, 단기간에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내가 쓰고도 남을 만큼, 그래서 내 자녀도 풍족한 삶을 살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은 다다익선일까.
▲사진: 황유선 언론학 박사•〈네덜란드 행복육아〉 저자•전 중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전 KBS 아나운서
더치페이가 유래된 검소한 나라, 네덜란드
유럽에서도 검소하기로 소문난 네덜란드 부모들은 적어도 돈에 관해서 우리와 사뭇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장 경멸하는 행동은 바로 ‘돈 있는 척’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돈 많은 것을 자랑 삼아 유세 떠는 것을 볼 때 부러워하기는커녕 진심으로 경멸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먹은 건 내가 다 계산할게”라고 호기롭게 외친다거나 식사 후 말없이 다른 사람의 밥값까지 다 계산한다면 감사인사보다 오히려 눈총을 받기 일쑤다.
그들은 이런 행동을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낀다.
그러면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돈으로 통하는 ‘빽’의 효력이 있을리 없다. 네덜란드에는 김영란법 같은 건 존재할 필요도 없다.
때 되면 이해관계 있는 사람에게 상품권을 건네고, 의도를 품고 미소 지으며 각종 금전적 혜택을 제공하는 일은 없다. 그래 봐야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사회,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다.
그렇다고 그들이 돈에 대해 초탈했다고 생각하면 그것 역시 오해다. 15세기부터 해상무역으로 상당한 국부를 축적한 네덜란드는 당시 이미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세계 최초로 주식거래의 기본을 마련한 나라이기도 하다.
상인의 후예인 그들에게 경제관념은 일찍이 발달했고 돈은 무엇보다도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갖고 있는 단돈 1센트라도 수호하고, 벌 수 있는 단돈 1센트라도 차지하기 위해 싸워라”는 네덜란드 식 칼뱅주의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가능한 돈을 많이 벌되 번 돈은 최대한 안 쓰는 것, 그건 그들 사이에서 신념이다.
그 유명한 더치페이가 네덜란드 사람들을 빗대어 유래된 것만 보더라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단 돈이 연관된 상황이라면 한 푼도 손해보려 하지 않는다.
1인당 GDP 4만 8,000여달러, 세계 13위. 우리보다 훨씬 부강한 나라 네덜란드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방식은 유럽 내에서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하다.
돈 많은 것이 우월한 삶이 아니라는 그들의 확고한 가치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런 경제관념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배운다. 네덜란드의 부모들은 검소한 삶의 방식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녀 앞에서도 손수 실천한다.
예산은 언제나 딱 맞게 짠다. 가능한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즐긴다. 조금이라도 싼 것을 살 수만 있다면 기꺼이 멀리까지도 찾아 나서는 바람에 간혹 교통비가 더 들기도 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런 여정을 즐긴다. 낭비나 사치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지갑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닫아버린다.
만약 의도치 않게 남의 집을 방문했는데 우연히 식사 시간이 겹친다면 영락없이 소파에 앉아서 다른 식구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가정에서도 음식은 늘 더도 덜도 아닌 딱 맞는 양으로 준비하기 때문이다. 인색하리만큼 낭비 없고 검소한 삶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얼마나 돈의 가치를 높게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들은 돈보다 인간의 가치가 훨씬 더 소중함을 알고 실천한다. 네덜란드에는 호화로운 유아용품 브랜드가 없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그런 비싼 용품을 사주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돈의 가치는 내 아이의 가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돈과는 별개로 인간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자녀에게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다고 잘난 척을 한다면 그건 곧 돈 없는 사람을 깔보는 셈이 되고, 그런 사고방식은 네덜란드 부모들 사이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물론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아주 좋은 차를 타거나 거대한 저택에 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부자 티가 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대단한 사람인양 우러러보지 않는다.
이렇듯, 네덜란드 부모들은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자녀에게 가르친다. 스스로도 돈 많은 것이 곧 더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지도 않는다. 이런 부모들의 모범적 실천이 그들 자녀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사회를 만들었다.
돈으로 평가 받거나 차별 받지 않고, 돈과 인간의 가치가 각기 별개로 존중되는 사회는 네덜란드 부모들의 행동과 인식으로 형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가난한 시절을 겪었던 우리나라의 과거 세대에서는 나는 좀 부족하게 살더라도 내 아이만큼은 기죽지 않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하지만 이미 풍족한 사회가 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는 절약하더라도 내 아이를 더 잘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는 좀 덜 망설인다.
여기까지는 좋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문제다. 꼭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신발을 신고, 좋은 물건을 써야만 아이의 가치가 올라가고 내 아이의 기가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돈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보다 높아진다.
우리보다 훨씬 부자 나라인 네덜란드 부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돈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되, 인간의 가치가 그보다 더 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먼저다.
부모자식 간에도 노력한 만큼 대가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
네덜란드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태도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경제적으로 신세를 지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더치페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Going Dutch, Dutch Treat’는 바로 이런 태도의 산물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10원 단위까지도 철저하게 따져 각자 계산하고, 생일초대를 받은 모임에서 자기가 마신 음료수 값을 본인이 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네덜란드 사람들도 인정하는 좀 심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자녀들도 부모의 돈이 곧 나의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로부터 당당하게 용돈을 받는 자녀는 별로 없다.
정원을 가꾸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뭐라도 해서 용돈을 벌어 쓰는 게 그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이런 습관들이 단지 신세를 안 지는 것을 넘어서서 좀 야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서든 서로 쿨 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대가라고 여기며 이런 삶의 방식을 자랑스러워한다.
실제로 그렇다. 내가 한 만큼 받으면 되고 상대가 한 만큼 주면 된다. 불필요한 배려를 하거나 편의를 봐주지 않아도 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나이가 많거나 선배 혹은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밥을 사는 일이 없으니 상사나 선배 눈치를 불필요하게 볼 필요가 없다. 지위나 연배에 상관없이 양심껏 성실히 자기 일을 하면 그만이다.
결국, 한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과 인격으로 공정하게 평가 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인정에 끌리지 않아도 되고 굳이 인맥을 쌓기 위해 밤늦도록 회식에 참석 하거나 모임을 쫓아다니며 기운 뺄 필요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타박할 수 있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탈이 난다. 정으로 시작한 것이 청탁이 되고 부패로 커질 수 있다.
내 자녀에게 당장 풍족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자녀를 위한 단편적인 해결이다. 진정 아이에게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제공하고 싶다면 돈이 권력이 되지 못하고, 돈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부정청탁을 금하는 부끄러운 법 조항 없이도 내 자녀가 실력으로 당당히 승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부모가 동시에 나서야 할 때다. 부모 스스로 부탁하지 않고 대접받지 않는 생활습관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