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올해 유통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던 경영진은 단연 정용진닫기정용진기사 모아보기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올 한해 두 차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일 ‘깜짝 소식’을 예고했고, 이는 편의점 이마트24와 35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실현되며 업계는 물론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연내 발표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온라인쇼핑몰 인수합병(M&A)과 아마존과의 협업 등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가운데 어떤식으로 전개되든 이커머스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돼 다시 한 번 정 부회장의 ‘입’에 관심이 모아진다.
◇ 위드미→이마트24 승부수
“(위드미와 관련) 조만간 깜짝 놀랄 만한 발표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 5월 31일 신세계그룹 채용박람회장에서 정 부회장은 그동안 부진했던 편의점 사업의 변화를 예고했다.
스타필드와 창고형 할인매장 트레이더스 등 같은 시기에 출발한 신사업의 승승장구와 다른 모습에 위드미는 정 부회장의 ‘아픈손가락’으로 평가받았다.
이에 정 부회장은 지난 7월 기존 위드미에서 ‘이마트24’로 브랜드명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웠다.
브랜드스탁 발표 기준 ‘국내 브랜드 파워 2위(올해 3분기 기준 3위)’를 기록한 ‘이마트’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신세계는 올해부터 3년간 총 3000억원을 이마트24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마트24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신세계가 지난 2014년 150억원, 올해 상반기까지는 200억원을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대폭 늘어난 규모다.
매장 구성도 갈아엎었다. 기존 편의점들은 담배(약 40%)와 주류(약 10%)가 절대적인 매출 비중을 차지한다.
정 부회장은 담배·맥주 가게로 굳혀버린 편의점 이미지부터 바꾸기로 했다. 후발주자로서 고객 전환율이 높은 기존 편의점 방식을 따르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승부하겠다는 ‘게임첼린저’를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이마트24는 리브랜딩 효과가 반영된 올해 3분기에 2052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동기대비 80.9% 증가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5060억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97.4% 성장했다. 지속적인 점포수 증가에 힘입어 이마트24는 지난 3분기를 기점으로 미니스톱을 제치고 업계 4위로 올라섰다.
아울러 지난 3분기 리브랜딩 점포의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0% 증가한 반면 기존점은 0.6%의 역신장을 기록해 ‘간판 바꿔달기’ 효과도 가시화됐다.
지난달 기준 리브랜딩을 완료한 점포는 전체의 60% 수준으로, 이들 점포의 일평균 매출과 객수는 각각 8%, 9%씩 증가했다. 이마트24는 연말까지 전 점포의 리브랜딩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이마트24는 점포수 2700개, 매출 7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려면 매장수가 5000~6000개에 도달해야 할 것으로 회사측은 내다봤다. 목표 시기는 2019년이다.
다만 리브랜딩 초기투자비용 증가 등으로 적자폭이 커진 것은 숙제다. 이마트24의 3분기 영업적자는 78억원에서 114억원으로 36억원 가량 늘었다.
업계에서는 올해 이마트24의 영업손실이 지난해 350억원보다 늘어난 400억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24 관계자는 “사업 초기 투자비용 증가로 적자폭이 늘어난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예상했던 일”이라며 “올해 리브랜딩이 완료되면 자연스레 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워라밸’…35시간 근무제 도입
“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구직자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여야 한다.” 정 부회장은 채용박람회장에서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지난 7월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도 그는 “신세계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들의 주요 발언에서 빠지지 않지만, 정 부회장은 대기업 최초 ‘35시간 근무제 도입’이라는 파격 행보로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신세계그룹은 내달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 이에 따라 신세계 임직원들은 임금 변동없이 하루 7시간을 근무하게 되며,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9-to-5제’를 시행하게 된다.
또 업무 특성에 따라 오전 8시 출근 후 오후 4시 퇴근, 오전 10시 출근 후 오후 6시 퇴근 등으로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근무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임금하락이 없다는 점이다. 기존 임금을 그대로 유지함과 아울러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임금인상도 추가로 진행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기본적으로 그룹 전 계열사에 도입되며, 백화점과 이마트 점포 근로자의 경우 근무스케줄을 조정을 통해 근로시간을 1시간씩 단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재 밤 12시까지 영업하는 69개 이마트 매장의 경우 폐점 시간이 11시로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점포 자체 영업시간 단축은 순차적으로 상권에 맞춰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국내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야근과 연장근로가 많은 서비스업계 특성에도 불구하고 신세계가 대기업 중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다수 기업들은 ‘워라밸(Work-life balance)’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 차질과 임금 하락 이슈 등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세계 측은 장시간 근로·과로사회로 대표되는 국내 근로문화를 획기적으로 혁신해 임직원들에게 ‘휴식이 있는 삶’과 ‘일과 삶의 균형’을 과감히 제공한다 목표다.
쉴 때는 제대로 쉬고 일할 때는 더 집중력을 갖고 일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번 근로시간 단축은 2년전부터 점포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준비해온 장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며 “이마트 등의 경우 영업시간 단축을 병행해 근로시간 단축 혜택을 파트너사와도 함께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실험은 노동조합 내에서도 반응이 엇갈린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3대 대형마트 노조원 500여명이 합쳐 출범한 민주노총 산하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세계식 주35시간제는 근로시간 단축의 외피를 쓴 임금 삭감 꼼수”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35시간 근무제에 따라 현장에서는 오전조와 오후조가 동시에 근무하는 시간이 2시간 줄어들게 된다”며 “줄어든 시간만큼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늘어나고 사용자의 인건비는 줄어든다”며 인력 충원을 요구했다.
반면 이마트 3개 노조 중 교섭대표 노조인 한국노총 산하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은 지난 8일 사측과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임금협약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김상기 노조 위원장은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동시간 단축 등이듯 사회적분위기가 형성돼 합의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폐점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는 대신 이들 노사는 △파트타임 노동자 1000여명 정규직전환 △전문직(진열·계산) 기본급 10%인상(통상시급 8645원) △밴드직(관리직)급에 따라 기본급 2~4%인상 △전 사원 노사상생 격려금 5만원 등에 합의했다.
◇ 아마존? 티몬?…소문만 무성
“온라인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마련돼 있다. 그 중 일환으로 11번가 인수를 검토한 것은 사실. 올 연말 안으로 (온라인몰 관련) 깜짝 놀랄만한 발표가 있을 것” 정 부회장은 지난 8월 스타필드 고양 오픈식에서 이 같이 예고했다.
현재 신세계는 지난 2014년부터 신세계몰·신세계백화점·이마트몰·트레이더스 등 계열사 4곳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합한 ‘SSG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SSG닷컴은 지난해 4분기 첫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나, 연 거래액은 2조원 규모에 머물러있다.
경쟁사인 롯데는 8조, 옥션과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가 14조, SK플래닛의 11번가가 연 6조 8000억원대의 거래액을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낮은 수치다.
정 부회장이 온라인 사업 강화 방안으로 11번가 인수를 검토했던 것 또한 몸집을 불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오픈마켓 점유율은 G마켓이 38.5%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1번가(32.3%)와 옥션(26.1%)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신세계가 11번가를 인수하게 되면 단숨에 업계 1위로 도약하며 점유율 지각변동이 예고돼있던 상황이었으나, 양사의 지분율 차이와 SK그룹의 온라인 강화 방침 등으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한 우회로로 신세계의 소셜커머스업체 티몬 인수도 거론된다. 신현성 티몬 이사회 의장이 범 삼성가(家)로 정 부회장과 묶여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티몬이 미래성장 동력으로 성장시킨 ‘슈퍼마트’ 이미지도 이마트와 쉽게 연상된다는 점도 이같은 소문에 힘을 싣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티몬의 연 거래액이 SSG닷컴과 비슷한 2조 5000억원대인 점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가 티몬을 인수해도 타 이커머스 업체는 물론 경쟁사인 롯데도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티몬을 두고 깜짝 놀랄만한 발표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방안으로는 미국의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과의 협업이 대두된다. 이마트24가 그랬듯,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과의 경쟁보다는 직접구매(직구)를 통해 해외 소비자들을 흡수하겠다는 ‘게임첼린저’ 방향이다.
또 스타벅스코리아와 스타필드 추진 과정에서 외국계 회사와 협업을 했던 경험도 신세계의 강점이다.
아마존 입장에서도 신세계와의 협업은 매력적이다. 현재 아마존은 국내 판매자들이 해외로 제품을 내다팔 수 있는 ‘글로벌 셀링’을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 역시 국내 진출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신세계와의 협업을 통해 상륙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실제 박준모 아마존 글로벌셀링 한국지사 대표는 지난 9월 간담회에서 “국내 시장 진출 계획은 아직 말할 수 없지만 다양한 시장에서 확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아직 온라인사업 강화 방안과 관련해 발표가 예정돼있는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신미진 기자 mjshi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