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규제 완화 움직임과 더불어 케이뱅크도 연내 방카슈랑스를 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 방카 시장 확대가 이뤄질 것은 분명해보이나 정작 보험사의 수익성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권에서도 수익 창출을 위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보험사들의 수수료 출혈 경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 “방카슈랑스 성장 가로막는 칸막이 규제 문제”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국은행연합회는 방카슈랑스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현행 방카슈랑스 규제가 2003년에 만들어진 후 14년째 그대로라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방카슈랑스는 시중 은행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가리킨다. 현행 규정상 방카슈랑스에서는 개인 보장성 상품과 자동차보험은 판매할 수 없다. 25% 룰이란 보험사 한 곳당 전체 계약의 최대 25%까지만 판매가 가능하도록 한 장치다. 인기 보험 상품이라도 은행에서 판매 한도를 채우면 더이상 판매가 불가능하다.
은행연합회는 종신보험이나 자동차보험 등 저축성보험 이외 다른 보험 상품들을 방카슈랑스로 팔 수 있도록 허용하고 25% 룰도 폐지해달라고 공식 제안했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인기 상품인데도 판매 한도를 채우면 더 이상 팔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은행권의 주장이다.
방카슈랑스가 보험 상품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험은 다른 금융상품과는 달리 설계사가 직접 고객과 컨택하고 보험 니즈를 환기시켜 가입을 설득하는 영업 전략이 주효한 산업이다. 그러나 현행 방카슈랑스 규제에 따르면 점포별로 보험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은 최대 2명까지만 가능하고 직접 고객을 찾아가거나 특정 고객에게 이메일 등을 보내 상품을 안내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판매 장소 역시 오프라인 점포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만 가능하다.
금융연구원도 지난달 ‘방카슈랑스 제도 시행효과의 종합적 분석 및 시사점’을 발표하고 방카슈랑스 규제 때문에 긍정적 효과가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자 3명 중 2명 이상은 판매상품 제한과 비중 제한으로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판매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실적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며 “보험상품을 안 파는 것이 아니라 못 팔고 있는 것”이라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실제로 방카슈랑스 가입 실적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한 보험 가입 규모는 10~30% 가량 축소되는 추세다. 상반기 총 초회보험료는 3조8651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6.5% 감소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융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슈기 때문에 모든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 하나·NH농협생명 비롯 계열 은행 등에 업힌 보험사 수혜 전망
방카슈랑스 규제 빗장이 풀리면 당장 수혜를 받는 것은 은행계열 보험사들이다. 지방 소도시와 읍·면·동 단위까지 구석구석 진출해있는 농협 계열의 보험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하나생명의 경우 대부분 보험 계약이 방카슈랑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어 계열 은행을 통한 공격적인 영업 확대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하나생명은 올해 상반기까지 90억6800만원의 초회보험료를 거뒀다. 이가운데 71% 가량에 해당하는 64억3700만원이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이뤄진 계약이다. 하나생명은 지난 2014년 비용 효율성 제고를 위해 설계사 채널 운영을 사실상 중단한 후 계열 은행을 활용한 방카슈랑스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비중은 전체 계약의 96.3% 가량에 달한다.
하나생명은 최근 방카슈랑스 채널의 변액보험 판매를 재개했다. 하나생명은 지난 2014년 증시가 악화되면서 수익률이 악화된 변액보험 판매를 전면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 변액보험 펀드에서 준수한 수익률을 기록하며 판매를 재개한 것.
NH농협생명 역시 방카슈랑스가 강한 회사다. 지난해 거둔 초회보험료 2조4300억원 가운데 2조3400억원이 방카슈랑스 실적으로 무려 96%에 달한다.
농협생명이 방카슈랑스에 날개를 달 수 있는 이유는 금융당국의 예외 인정으로 방카슈랑스 룰 적용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 당시 기존 진행하던 공제사업을 보험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이 배려한 것. 덕분에 농협생명·농협손보 등 계열 보험사는 지역 곳곳에 뻗어 있는 농·축협 단위조합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우량고객들을 대거 유치했다. 농협생명 자산은 2012년 당시 42조2500여억원에 불과했으나 2015년 57조2000여억원으로 15조원 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농협손보 역시 2조6000억원에서 6조8000여억원으로 4조2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 방카슈랑스 시장 확대 전망… 케이뱅크도 가세
국내 인터넷 전문은행 1호인 케이뱅크도 연내 방카슈랑스 개시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케이뱅크는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업개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케이뱅크는 별도의 회원가입이나 로그인 없이 다양한 보험상품을 비교해보고 가입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저가형 보장성 상품, 환급률이 높은 저축보험 상품군 등을 갖춰 고객 상황에 맞는 상품을 추천할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수익률 악화에도 불구하고 방카슈랑스 시장이 점차 확대돼가는 것에 대해서 업계 관계자는 ‘고객과의 접점 확대’를 이유로 꼽았다. 소비자의 신뢰도가 두터운 은행권을 통해 보험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판매인의 전문성이 부족해 보험의 상품 구조나 보장 내용 등 복잡한 상품 정보를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보험상품은 장기적이고 세부 담보가 많아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데 전문 판매인이 아닌 이상 이를 소비자에게 충분히 납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방카슈랑스 손해보험 신계약 가운데 불완전판매 비중은 평균 0.09%로 보험대리점 0.04%나 설계사 0.08%보다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에 방문하는 고객들의 성향도 불완전 판매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보험설계사의 경우 대부분 며칠에 걸쳐서 보험 계약을 성사시키는데도 불완전 판매가 생기는데 한 자리에서 30~40분 설명하는 것만으로 계약이 이뤄진다면 신계약 증대만큼 높은 불완전 판매율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을 찾는 대부분 고객들은 빨리 업무를 보고 돌아가고 싶어한다”며 “방카슈랑스 상품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은행은 본의 아니게 불완전 판매를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방카 시장 확대돼도 보험사 수익성 의문“ 지적도
방카슈랑스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의 계열사 밀어주기가 성행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상품의 경우 특출나게 좋다거나 하는 차별 포인트가 드러나는 게 쉽지 않다”며 “경쟁력이 뛰어난 상품이면 타 은행에서 판매량이 급증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계열사 은행에서 수익을 내는 것으로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관계자도 “수익성이 우선”이라고 내다봤다. 예대마진으로만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파생상품의 비중을 늘리고 싶어한다는 것. 관계자는 “은행권도 예전 같지 않아 요새는 내 식구 챙겨주기보다는 수익성 좋은 회사를 컨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파생상품 가운데서도 그나마 파이를 늘릴 수 있는 게 방카슈랑스라고 판단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의 수익성이 높다는 것은 결국 보험 상품 판매 수수료가 크다는 의미로 보험사로선 더 높은 사업비를 감당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TM 채널에 주력하면서 방카슈랑스 영업을 중단한 라이나생명은 “당국 규제가 풀리고 방카 시장이 활성화돼도 재진출은 불확실”이라며 “고객 접점 확대 등 장점도 많겠지만 보장성 보험을 판매하면서 높은 은행 판매 수수료까지 지불해야 한다면 수익성은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저축성보험 비중이 큰 방카슈랑스 채널 특성상 시장이 확대돼도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IFRS17 도입을 목전에 앞둔 국내 보험업계는 지난해부터 저축성보험 비중을 낮추고 재무건전성 확보에 비상이다. 저축성보험을 주력으로 팔아온 방카슈랑스 채널도 영향을 받아 상당 부분 쪼그라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방카슈랑스에서 판매하는 상품 포트폴리오의 경우 90% 이상이 저축성 보험 상품”이라며 “IFRS17 도입을 대비해 보험 계약의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기 때문에 현행 25% 판매량도 다 채우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민경 기자 aromom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