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권’ 놓고 롯데·신세계와 씨름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SK플래닛은 최근 11번가의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롯데·신세계그룹과 각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롯데와 신세계는 온사인 강화를 위해 경영권 인수를 조건으로 50% 이상의 지분 인수를 내세웠지만 SK플래닛 측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다만 최근 신세계는 50:50 출자방식도 염두해 두고 재협상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신세계의 SSG닷컴 거래액은 2조원대로, 경쟁사인 롯데의 8조원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물밑에서 이뤄지던 SK플래닛 투자 유치는 지난 8월 정용진닫기정용진기사 모아보기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발언을 통해 수면위로 떠올랐다. 정 부회장은 스타필드 고양 오픈식에서 “온라인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마련돼 있다”며 “그 중 일환으로 11번가 인수를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최근 열린 롯데지주 출범식에서 “11번가 인수를 위해 SK와 협의해왔지만 최근 중단했다”고 밝혔다. 한 롯데 관계자는 협상 중단 이유에 대해 “가격과 지분 등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았다”고 전했다.
SK플래닛 측은 협상이 알려진 시기부터 현재까지 ‘사업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 검토’ 라는 공식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는 상태다. 직접적으로 ‘투자 유치’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롯데·신세계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이미 충분히 확인됐다는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이는 서성원 SK플래닛 대표의 발언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서 대표는 롯데·신세계와의 협상 건이 알려진 뒤 사내망을 통해 전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우리가 처해있는 시장 상황과 경쟁 환경은 여전히 어렵다”며 “이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성장을 위한 다양한 옵션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플래닛이 올 상반기 이례적으로 실적을 공개한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SK플래닛은 지난 2013년부터 경영유지 목적을 이유로 실적 비공개 방침을 이어왔다.
SK플래닛이 지난 8월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11번의 거래액은 4조 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0% 늘어났다. 매출이 20% 성장하고 영업적자를 절반으로 줄여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11번가의 ‘매각’이 아닌 단순 투자유치는 다소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합작 시 둘 중 어떤 브랜드를 앞세울 것인가를 정할 수밖에 없다”며 “온라인 퍼스트를 외치는 상황에서 롯데와 신세계가 경영권을 쥘 수 없는 투자에 마냥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11번가의 지난해 적자는 1800억원 규모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SK플래닛의 지난해 영업손실(3652억원)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SK플래닛이 매각보다는 경영권 주도의 투자를 고집하는 데는 SK그룹이 이커머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박정호닫기박정호기사 모아보기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진행된 사내 임원회의에서 “11번가는 미래의 커머스 플랫폼으로 진화 발전시켜 나가야하는 중요한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매각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11번가가 중심이 되고 주도권을 갖는 성장 전략만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SK플래닛의 지분 98.1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텔레콤은 (주)SK가 25.22%의 지분율로 지배하고 있어 ‘(주)SK→SK텔레콤→SK플래닛’으로 이어지는 수직구조다.
아울러 박 사장은 인공지능(AI) 기술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신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11번가를 미래의 커머스 플랫폼으로 육성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실제 최근 11번가는 SK텔레콤 AI기기 ‘누구(NUGU)’를 통해 음성 인식 쇼핑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앞서 SK네트웍스도 SK텔레콤의 IoT 기술을 활용해 렌털사업의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에 비춰볼 때, SK텔레콤과 11번가의 기술제휴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경쟁사인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도 KT와 정보통신(ICT) 기술 접목을 위한 신사업 발굴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11번가와 AI, 사물인터넷 등 기술제휴는 계속적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라며 “박정호 사장이 매각설을 일축했듯이 11번가를 차세대 플랫폼을 키워 나갈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신미진 기자 mjshi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