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1심 판결에서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유죄 근거로 본 재판부의 판결이 적절했는가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의 공방은 치열하다.
포괄적 현안인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묵시적 청탁으로 유죄를 이끌어 낸 것이 올바른 판단이냐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 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 청탁을 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포괄적인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서는 묵시적 청탁으로 보며 이를 유죄 근거로 삼았다.
부정청탁은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가 없으며, 공무원과 민간인이 뇌물수수를 공모했다면 공무원이 받은 것과 같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
그러나 재계는 혼란스럽다. 정경유착이냐 단순 정책협조냐에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묵시적 청탁을 조금만 확대하면 저촉되지 않는 기업은 없다고 주장한다. 또 기업 운영 차원에서 국가 최고 권력자의 요청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은 것이란 설명이다.
확실한 증거 없이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것은 법정증거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법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입장이다. 또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 정책협조, 정경유착이라 치부하기에는 법적 근거와 기준이 명확치 않다고 설명한다.
이에 항소심의 핵심 쟁점은 묵시적 청탁과 관련, 1심 재판부 판단을 변호인단이 반증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변호인단은 1심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구체적·명시적 청탁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과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와의 공모를 입증하지 못한 것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의해 수동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판단을 얻어낸 부분과 청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의 없다는 점도 적극 파고들어 사실 입증에 총력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특검이 주장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와의 관계가 ‘경제적 공동체’로 볼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었는지도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라고 다투면 이 부회장이 선고받은 징역 5년의 형이 더 늘어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1심이 판단한 뇌물공여 논리를 깨지 못한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항소심은 통상 1심 선고 후 50일 전후로 진행되며, 9월 말이나 10월 중순께 재개될 전망이다.
뇌물공여 등 5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이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기존 논리를 굳히려는 특검과 이에 맞선 변호인단의 날선 공방이 예상되는 가운데, 재판부가 유죄 판단 근거로 내세운 묵시적 청탁이 향후 재판 과정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한 기자 sh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