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 한국경제연구원.
한경연은 13일 ‘상법개정안의 다섯 가지 쟁점에 대한 검토의견’을 통해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된 상법개정안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번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임·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우리사주조합의 사외이사 후보추천권 부여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이 될 이사’를 별도 주주총회에서 분리선임토록 하고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에는 대주주가 아무리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어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현행 일괄선임제와 달리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선임하는 첫 단계부터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현행제도 보다 대주주 의결권제한의 효과가 강화된 법안이다.
이에 대해 한경연은 외국계 투기자본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외국계 투기자본은 일명 ‘지분쪼개기’로 3% 제한을 회피하며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대주주보다 주식을 적게 보유하고 있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를 다수 선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소버린과 SK 경영권 분쟁 당시 SK주식 14.99%를 보유한 소버린은 지분을 5개로 쪼개 각 2.99%씩 보유하게 하고 모든 의결권을 행사한 반면 SK 최대 주주측은 의결권 행사를 3%밖에 할 수 없었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한데 분리선임을 강제해 이러한 제한을 더욱 강화하려는 개정안은 주주의 이사선임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주선 강남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를 통한 대주주 의결권 3%제한 강화조치는 특히 자회사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자에게 심각한 폐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주회사는 정부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위해 순환출자를 가지고 있던 회사들의 전환을 독려한 정책으로 이번 개정안은 정부정책에 따랐던 지주회사에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도 민사법상 사적자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들이 선호하는 이사의 선출 가능성을 높이는 이사선임방식으로 지난 1998년 개정상법에서 도입됐다. 단, 집중투표제를 원하지 않는 기업은 출석주주 3분의2 이상 찬성 의결로 정관을 변경해 도입을 배제시킬 수 있다. 이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어 소수주주들이 도입을 원한다면 정관에서 배제하기 쉽지 않아 현재도 사실상 집중투표제를 강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한경연의 주장이다.
한경연은 이번 개정안은 원천적으로 배제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의무화 하자는 것으로 다수의 주주가 집중투표제를 원하지 않아도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경연은 민사법 상 사적자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수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방향이 있기 때문에 집중투표제 실시 여부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며 “집중투표제도가 의무화되면 외국 투기펀드들에 의해 우리 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모회사 소수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인정 여부를 법원의 해석에 맡기고 있다. 이 경우에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어 두 회사가 경제적 동일체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인정된다. 최근 일본이 상법에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등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이 제시한 개정안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의 50%만 보유한 경우에도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 현존하는 제도 중 가장 강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자회사에 대한 평균 지분율이 75%를 넘고 있는 우리나라 지주회사 체제에 큰 위협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주회사를 선택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특정한 영업부분에 대한 주주의 영향력을 단절시키는데 있는데, 다중대표소송에 의해 복수의 기업으로 구성된 그룹을 하나의 회사로 간주하는 것은 회사의 법인격을 무시하는 것으로 지주회사제도 자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개정안이 도입될 경우 자회사 경영진이 장기적 안목에서 전략적 사업육성을 위해 과감하게 결정한 투자가 자칫 일시적으로 모회사 주주의 이익을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당할 경우 궁극적으로는 자회사의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한경연은 제기했다.
우리사주 조합에게 사외이사 선임권을 주는 것은 특정 집단(우리사주조합)에 속하는 주주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으로서 회사법의 기본원칙인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지분율을 충분히 보유한 최대주주 등의 의결권은 제한하면서 일부 주주에게는 1주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결과가 되어 법리적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근로이사제도는 주주가치의 제고와 빠른 국제경쟁력 확보가 요구되는 현대 기업 활동, 특히 벤처기업이나 IT기업 체제에서는 지배구조의 비효율성 때문에 채택하기 어렵다”며 “전통 제조업이 강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체제, 은행자본주의가 근간인 유럽의 경우에는 맞을지 몰라도 자유시장경제체제하의 주식시장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 미국, 일본, 한국 등에서는 맞지 않는 제도”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근로자의 경영참여가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는 유럽도 최근 경제위기에 빠지면서 근로자의 경영참여제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추세다.
한편 전자투표제 활용으로 소수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여가 현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국내기업에서 실제 전자투표로 행사된 주식 비율은 2015년에는 1.62%, 2016년에는 1.44%에 불과했다. 이는 개정안이 통과돼 전자투표를 의무화한다고 해도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업무나 리스크 등에 비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전자투표제는 현 상법과 같이 개별 회사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소수주주의 주주총회 참여를 독려하는 유인을 마련하는 것은 개별 기업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서효문 기자 sh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