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감원이 소멸시효(2년)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지시한 데 이어 도입을 앞두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와 관련, 단계적 부채평가를 시행하기로 하는 등 일방적으로 권고하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권고 아닌 권고를 거부할 수 없는 보험업계는 당혹감이 역력하다.
생보사들이 2010년 이전 판매한 보험 상품 중 자살한 건에 대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휘말린 소송에서 대법원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청구되지 않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미지급 시 제재조치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반면 생보사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며 맞선 상황이다.
금감원은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보험사가 ‘신뢰’를 잃는다면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면서 미지급 자살보험금 지급을 촉구하고 나섰다. 금감원과 보험업계의 갈등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자살보험금 논란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금감원은 IFRS4 2단계에 대비해 보험부채를 단계적으로 시가평가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경우 보험사들이 3년 안에 최소 30조원대의 자본금을 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회계기준이 변경되면 보험사는 미래 발생 손실에 대해 책임준비금을 쌓아야 한다. 연금보험 판매가 많고 보험 부채의 기간이 긴 생보사에게는 부담이 더 크다. 자살보험금 논란에 이어 IFRS4 2단계 도입에 대비한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의 일방적인 모습은 아쉽다. 누구보다도 이번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은 금감원이다. 생보사들이 약관에 반영한 표준약관을 만들고, 문제가 되고 있는 상품 인가를 내준 곳이 금감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보험업계의 편에 서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금감원이 나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그 태도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애초에 상품 인가를 내준 금감원이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생보사들에게 전가하고 가장 먼저 질타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제발이 저린 셈인 듯 보이기까지 한다.
이제 더 이상 소비자의 신뢰나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 신뢰 제고를 내세워 온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정작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린 기자 pudding@fntimes.com